어우렁 2009. 11. 16. 09:35

 

 

화암사에 대한 안내판들

 

0. 고성 화암사 소개

    769년(신라 혜공왕 5) 진표율사가 설악산 북쪽 기슭에 창건한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 후 고종 원년까지 5차례 화재를 입었다고 전하며, 설법전 1동만이 남아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소실 때마다 중건하고 터를 이전하다가 1912년 지금 자리에 자리잡았다. 전통사찰 제27호로 지정되었고, 1990년 8월 7일 설법전 1동이 문화재자료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 절 앞의 넓은 평원이 세계잼버리대회 종교의식 행사장으로 지정되면서 대웅전 등 건물 11동을 신축하였다. 대회에 참가한 천여 명의 불교국가 청소년들이 법당에서 수계식을 가졌으며, 그 후 대회장은 청소년 수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 화암사는 본래 건봉사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신흥사의 말사이다. 1864년에는 이곳 수바위 밑에 있다고 해서 이 바위 한자를 표기해 수암사(穗岩寺)라 하였다가 1912년 화암사라 개칭하였다.
- 현존하는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체 등 모든 건물들은 1991년 세계 잼버리 대회준비를 위한 주변 정비 계획에 따라 기존 건물들인 법당들을 철거하고 새로이 중건한 것이다. 
               화암사 기록에 따르면 5번의 화재
조선인조 원년계해년(1623)에 화재로 소실→3년 뒤 인조 4년에 중건
인조 12년(1634)산불로 소실→인조 22년에 구지동에 옮겨 중건
현종 3년(1662)화재→현종 5년 중건
영조 36년(1760)화재→다음해 구지에 다시 세움
고종 원년(1864)화재→그 해 9월에 수봉으로 이전 건립

 

 

화암사의 여러 모습들

 

 

 

 

 

 

 

 

 

 

화암사 올라가는길에 있는 부처와 제자상

 

포장된 도로에 불교 문장표시가 박혀 있다.

 

화암사 입구 올라가는 길에 화암사 부도군 모습

 

 

화암사 수바위의 모습

0. 수바위 이야기

   수바위는 계란 모양의 바위 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이 바위 윗면에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 이름의 “수”자를 수(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秀)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전설에 위하면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암사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히 불도(佛道)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한 객승(客僧)이 화암사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서는 쌀은 고사하고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객승의 욕심에 산신(山神)이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