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 2016. 4. 18. 07:14

 

 

육괴정과 남당

0. 육괴정 소개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하게 되자, 난을 피하여 도립리로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하였다. 당시의 명현인 김안국

  (金安國)을 비롯하여 강은(姜濦)·오경(吳慶)·성두문(成斗文)·임내신(任鼐臣) 등 다섯 선비들도

  함께 낙향하여 이 정자에 모여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는데, 이들을 가리켜 괴정육현(槐亭六賢)

  이라 하였다 한다.

  이 정자 앞에 여섯 사람이 우의를 기리는 뜻으로 느티나무 여섯 그루를 심어 육괴정이라 불렸다.

  처음에는 초당으로 지었다고 하나,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은 팔작집으로 된 본당과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으로 되어 있어 정자가 아닌 사당의 형태이다. 정문 안쪽에는 임진왜란

  때 여주 영릉(英陵)을 지키려다 순절한 엄용순의 손자 유윤(惟尹)의 충신정문 편액이 걸려 있다.

     

육괴정 안내문

 

육괴정의 전경

 

그들이 심은 여섯그루의 느티나무중에 살아있는 느티나무들의 모습

 

 

 

 

 

느티나무와 여섯 선비에 관한 이야기

 

육괴정의 담 모습을 구경하고는~~~

 

육괴정 안으로 들어간다.

 

대청마루 처마 중앙에는 육괴정이라는 현액이 달려있고~~~

 

대청마루 천정에는 여러가지 편액들이 걸려 있는데~~~

 

어느것인지는 몰라도~~~

 

저중에는 임란때 순절한 엄유윤의 충신정문 편액도 있다고 한다.

 

건너방을 들여다 보고~~~

 

담넘어 보이는 느티나무의 위용을 카메라에 담고~~~

 

문옆 헛간과~~~

 

툇마루를 쳐다보고~~~

 

대청마루의 눈길을 주는데 뽀얀 먼지가 그옛날의 영광은 사라지고 허무함만 쌓여 있는 듯 하다.

 

뒷쪽을 살펴보고~~~

 

콘크리트 바닥에 한뼘 숨통을 열고 자라고 있는 진달래 한그루에 안타까움을 전하고~~~

 

육괴정의 팔작지붕을 감상하고는 밖으로 나오려는데~~~

 

이상한 글씨가 있어 살펴 보았더니~~~

 

옛날에 교자상으로 제물을 옮기는데 이용했던 기구들이다. 

 

밖으로 나와 그옛날에 선비들이 심어다는 느티나무를 감상하면서~~~

 

육괴정에 옆에 있는 남당이라는 ~~~

 

작은 연못을 둘러보고느 오늘의 여행일정을 마감한다.

0.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