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왕릉
구 형 왕 릉
0. 주소 :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 16. 전화 ; 055-970-6443
구형왕릉 입구 모습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으로,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이 무덤을 둘러싸고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었다.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 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이다.
조선 정조 17년(1793)에는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구형왕릉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이 돌무덤은, 가락편년기(駕洛編年記)에 신라 법흥왕 19년(532년)
구형왕이 방장산(方丈山)의 태왕궁(太王宮)에서 돌아가시자 시호(諡號)를 양왕(讓王)이라 하였다고
하여, 가락국 제10대 양왕의 능으로도 전하며, 양왕은 신라왕의 싸움에서 패하여 전사하였다고도 전한다.
무덤은 형식이 일반 분묘들과 달리 각 층이 단을 이루고 있는 방형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잡석으로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있으나 후면은 갈수록
경사가 커져서 각 층의 등급이 높이에 따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석렬은 전면에서도 직선이 아닌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모퉁이가 뚜렷하지 않고,
정상은 봉분과 같이 타원의 반구형을 이루고 있다. 전면 중앙에서의 높이는 7.15m이고 무
엇을 위한 시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4단의 동쪽에 폭 40㎝, 높이 40㎝, 깊이 68㎝의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이 돌무덤을 중심으로 같은 잡석으로 높이 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으며, 그 앞에 상석과 장명등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석수가 각각 1쌍씩 있는데,
이 석물들은 최근의 시설물들로 돌무덤과는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
이 무덤을 구형왕릉이라고 명칭을 붙인 것은 홍의영(洪儀泳)(1750∼1815)의
≪왕산심릉기(王山尋陵記)≫에 처음 보이는데,
근처에 있는 왕산사에 전해오고 있는 ≪산사기권≫에 구형왕릉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제례를 지낼때 이용하는 전각 주변에 단풍나무의 모습과 ~~~
전각의 모습을 담고~~~
왕산 산행에 나섰다.
0.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