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 2021. 10. 9. 06:42

 

매월당 기념관

0. 주소 : 강릉시 운정길 85

 

매월당 기념관 표시석

기념관의 모습

기념관은 건물 한동으로 되어 있다.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은 김시습 관련 유물·자료를 전시해 놓은 기념관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의 작가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매월당 김시습의 절의 정신을 계승하고~~~ 

시와 소설에 담긴 매월당 김시습의 고매한 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경포 도립공원 내에 전통 한옥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매월당 김시습은 1435년에 무관 김일성의 아들로 태어나 1493년 홍산 무량사에서 사망하였다. 

이름인 시습(時習)도 〈논어 論語〉 학이편(學而篇) 중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생후 8개월에 글 뜻을 알았고 3세에 스스로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질을 타고났다 한다.

이름도 집현전 학사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재주를 보고 경탄하여 시습(時習)이라 지어 주었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것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하지 않고 ~~~ 

승려가 되었으며 벼슬도 하지 않았다.

1466년(세조 12)에 김시습은 충남 공주 군에 지역유지들과 함께 동학사 숙모전을 증축하고~~~

숙모전 옆에 단을 쌓고 사육신과 단종에 관련되어 순절한 신하들을 추모하였다.

그러나 김시습이 증축한 건물은 년(영조 4)에 화재로 동학사가 불에 소실되었다가 ~~~

후대에 1864년(고종 원년)에 만화(萬化) 스님이 다시 세웠다.

1472년에는 경기도 양주의 시골에 정자를 세우고 ~~~

조그만 화전을 일구면서 시와 저술에 전념하였다.

살아가면서 세조의 친위 세력을 조롱과 야유로 살던 그는 ~~~

사후 중종은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으며~~~

선조는 이이를 시켜 시습의 전기를 쓰게 하였고~~~

숙종 때에는 해동의 백이(佰夷)라 하였으며 질의의 벼슬을 추증하고~~~

남효온과 함께 영월 육신사에 배향되었으며~~~

공주의 동학사 숙모전에도 배향되었다.

그의 유품들을 감상하고는 밖으로 나와 ~~~

뜰에 있는 김시습의 시비와 그 시의 해석을 카메라에 담고 매월관 기념관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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