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맹정음 송암 박두성선생
훈맹정음 송암 박두성선생
송암 박두성선생의 생가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이곳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달우물 마을 출신이다.
그는 1926년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안, 반포했다.
일제 강점기에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했으며 ~~~
최초로 한국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는데 ~~~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는 특수한 문자이다.
1906년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같은 해 어의동 보통학교 교사로 일을 했고 ~~~
그 후 1913년부터 1935년까지 제생원 맹아부 교사를 지냈으며 ~~~
1936년 부터 1940년까지 인천 영화학교 교장을 지냈다.
사실상 나는 지금까지 점자가 맹인들에게는 세계 공통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
한국에 박두성 선생이 창안하여 반포하였다는 것이 대단히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박두성 선생의 생가라고 하지만 새로이 만든 건물이라 정이 그리 가지 않지만 ~~~
박두성 선생이 그 옛날 강화 교동 아주 촌 구석 이곳에서 서울로 유학와서 경기고와 ~~~
사범대학을 나와 점자 글씨에 대한 위대한 발명을 하신 것은 정말로 대단한 사건이 아닐수 없다.
박두성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고 ~~~
결국 평범했던 분은 아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암 박두성선생의 생가를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강화 교동교회를 찾아 나섰다.
교동교회는 송암 선생의 아버지 박기만 씨가 땅을 기증하여 생긴 교동 최초의 교회로 ~~~
현재 교동도에 있는 기독교유적은 1933년 지어진 이 교동교회가 유일하다.
우편함이 있는 길로 들어서면 교회의 지붕이 보이고 ~~~
곧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관리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 같으며 ~~~
빈 의자에는 낙엽만 쓸쓸히 떨어지고 있다.
교회의 모습을 촬영하고 ~~~
교회 안의 모습을 보려고 닫혀있는 창문 중 하나를 살며시 열고 ~~~
깨끗이 정돈된 교회 내부를 촬영하고는 다시 창문 꼭 닫았다.
교회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마지막 한 장 더 촬영하고 이곳 순례를 마친다.
0.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