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신 적소 수월정
노수신 적소 수월정
노수신 적소 수월정은 그가 괴산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던 곳으로 본래의 적소는 이름지은
연하동(煙霞洞)에 있었으나 칠성(괴산) 수력발전소 댐의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195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중앙에 우물마루를 깐
대청 1칸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 각 1칸이 있으며, 앞면에 툇마루를 둔 간소한 형태로서
“수월정(水月亭)”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노수신은 대윤의 한 사람으로 영의정에 올랐으나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543년(중종 38)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전적·수찬을 지냈다.
1545년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문정대비(文定大妃)가 수렴청정을 하자 대비의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을 비롯한 소윤이 정권을 잡은 뒤, 윤임(尹任) 등의 대윤을
제거하기 위하여 1547년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그는 소윤계열인 윤춘년(尹春年)과의 친분으로 죽음은 면했으나 이조좌랑에서 파직되고
순천으로 유배되었고 ~~~
1547년(명종 2) 정황(丁熿)과 함께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탄핵을 받고 진도로 옮겨 19년간 귀양을 살았다.
1565년 괴산으로 유배지를 옮겨와 이곳 수월정에서 칩거하였으며 ~~~
1567년(선조 즉위년)에 풀려나 교리·대사간·부제학·대사헌·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내고,
1573년 우의정, 1578년 좌의정, 1585년 영의정이 되었다.
588년 영의정을 사직하고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과거에 정여립을 천거한 일이
문제 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
그는 충주 팔봉서원, 상주 도남서원, 진도 봉암사, 괴산 화암서원 등에 제향 되었다.
그의 적소는 옛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으나 관리 상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으며 ~~~
마당에 세워져 있는 오래된 비석에 안내글이라도 있었으며 좋겠고 대청마루 위에 있는
현판은 무슨 내용인지 간략하게 해설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적소를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작은 문을 나서 ~~~
수월정에 관한 안내글과 ~~~
비석의 글씨를 읽어보고 ~~~
적소를 떠나면서 입구에 무엇인가 표시해 놓은 것을 촬영해 보았다.
0,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