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물따라 /서울, 경기

용흥궁과 용흥공원

어우렁 2024. 8. 1. 06:47

 

용흥궁

용흥궁(龍興宮)은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조선의 25대 왕 철종(哲宗)이 강화도에

은거하며 살았던 집을 후일 그가 왕위에 오르고 난 이후에 보수하여 단장하고

그 이름을 궁이라고 고쳐부른 이름이다.

입구에는 안내판과 함께 ~~~

비석 두개가 세워져 있는데 문충공 정원용과 정기세에 관한 공덕비이다.

강화 유수 정기세(鄭世)가 ~~~

1853년 철종이 보위에 오른지 4년 만에 ~~~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으니 ~~~

실질적으로 철종이 살던 시절에는 ~~~

이렇게 대궐 같이 큰 집은 아니였을 것이다.

좁은 고샅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궁의 건물은 ~~~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졌으나 ~~~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헐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하였고 ~~~

강화지역에 예절 교육관으로도 이용하고 있으며 ~~~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잠저구기비각 1동, 내전 l동, 외전 1동 ~~~ 

별전 1동 등이 있으며 한식 가옥에 가장 많이 쓰는 팔작지붕에 ~~~

건물 내부에 기둥이 없는 주심포집이다.

비각은 정사각형으로 앞면과 측면이 각각 2.5m로 넓이가 약 6㎡이며 철종대왕이

거주 했다는 비석이 있다.

내전은 앞면 7칸, 측면 5칸이며 건평은 90㎡이고 ~~~

별전은 앞면 6칸, 측면 2칸인 ‘ㄱ’자형 집으로 건평이 95㎡이다.

내전의 오른쪽과 별전의 왼쪽에 각각 우물이 1개씩 있으나 사용할 수 없다.

별전에는 마루 앞으로 작은 정원이 있고 별전 오른쪽에는 ~~~

 조금 더 큰 규모의 정원이 있었으나 잘 가꾸지 않아 화초가 전혀 없다.

작은 문을 나서면 ~~~

문 위에는 용흥궁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

용흥공원으로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

용흥공원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강화 성공회 성당이 보이고 ~~~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 크지 않는 공원인데 ~~~

공원 한쪽에는 ~~~

강화 3.1운동 기념비가 있고 ~~~

강화에서 3.1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를 지사들이 ~~~

사진과 함꼐 소개되어 있으며 ~~~

벽면 부조에도 당시 일본 경찰의 진압 모습과 만세운동이 세겨져 있으며 ~~~

한쪽에는 삼일 운동에 관련된 기록이 세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포토존에서 ~~~

한옥 모습을 하고있는 천주교 성당의 모습을 카메라로 잡아보며 관람을 마친다.

0.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