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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와 외규장각

어우렁 2024. 8. 6. 06:10

 

고려궁지와 외규장각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고려 궁궐이 있던 자리로 ~~~

1232년 몽골 침략에 대비하여 강화천도를 단행한 후 ~~~

1234년 정궁을 세웠던 곳으로 사적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38년간 궁궐로 사용되다가 그 후 모두 허물어진 자리에 ~~~

1631년 행궁과 강화유수부, 외규장각 등을 세웠으나 ~~~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을 ~~~

1976년에는 3문의 출입문을 세우고 돌담을 돌려 국방유적으로 정화하였다.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는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를 비롯해 ~~~

총 1,000여 권의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

297권의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기록한 의궤 191종(유일본 30종 포함) 297책을 포함한 ~~~

도서 359점을 약탈되었고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그 이후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촉탁 직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

도서관에 조선시대의 도서가 보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

목록을 정리하여 그 존재가 알려졌다.

서울대학교는 1991년에 정부에 도서 191종 279권의 반환 추진을 요청하였고 ~~~

1992년에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 목록을 프랑스에 전하여 도서 반환을 요청했다.

1993년 9월 한국·프랑스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경부고속철도 부설권을 ~~~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따 내기 위한 의도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을 가지고 와서 ~~~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의지을 보였지만 그러나 외규장각 도서는 약속과 달리 반환되지 않았고 ~~~

2000년 10월 다시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필사본이 없는 63권을 ~~~

'대등한 문화재 교환 전시' 형식으로 2001년까지 한국에 반환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

반환 협상이 연기되거나 프랑스 측에서 계속 협상을 지연시키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가 ~~~

2010년 11월 12일 G20 정상 회의에서 양국의 대통령 간에 외규장각 도서를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대 형식으로 대여하기로 합의하였고, 2011년 6월 11일 145년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외규장각 뒤편으로 올라가면 넓은 공터가 있는데 ~~~

이곳에는 고려가 원나라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하면서 개경과 같은 모습의 궁궐을 ~~~

세우고 규모는 작게 지워던 장소로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어 고려 궁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 ~~~

오래된 나무를 살펴보니 ~~~

400년이 넘는 나무로 이 나무는 역사를 알지 모르겠다.

동종이 보호받고 있는 종각이 있는데 ~~~

하지만 이 동종은 복제품이고 원품은 강화 역사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방청을 둘러보았는데 ~~~

이방청은 이방들이 업무를 본 곳으로 ~~~

특별한 것은 없고 ㄷ자형의 건물로 단순하게 지워져 있다.

0.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