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 2024. 11. 11. 06:23

 

소쇄원

소쇄원 안내도

소쇄원 소개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면 ~~~

흔히 볼 수 없는 대나무 풍경이 나오고 ~~~

이길로 가면 소쇄원을 건립한 소쇄공 양산보의 종가가 있는 곳으로

나갈 때 방문해 보기로 한다.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으로 주요 수목으로는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연목은 두 개가 있는데 이것은 하지이고 정자 밑에 상지가 있다.

오곡문이라고 적혀있는 이곳은 외원과 내원을 구분하는 담에 ~~~

작은 문이 있으며 담장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의 수문까지 포함하여 말한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내원과 외원의 유별을 주며 소쇄원 안으로 흐르며

작은 폭포도 만들어 중국과 다른 한국 고유의 정원 풍경을 만들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광풍각는 소쇄원 중심으로 계곡을 건너면 작은 연못 하지가 있다. 

광풍각 앞에 있는 너럭바위에서 옛사람들은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광풍각 뒤에 있는 제월당은 광풍각과 짝을 이룬다고 한다.

제월당의 뒤 모습이다.

광풍각에서 내려다보는 앞에 전경이며 ~~~

제월당에서 나가는 문의 모습이다.

주변은 대나무로 장벽을 이루고 ~~~

광풍각의 옆모습이다.

광풍각은 한가운데에 방이 있는 호남 지방에 많이 지어진 정자의 전형이다.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는 조광조의 제자 이였으나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죽음을 당하자

이곳으로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은둔하였으나 ~~~

잘 지은 건물에 워낙 풍경이 좋은 곳이라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았고

문학과 학문연구의 산실이 되었다.

김인후, 정철, 송순 이외에도 의병장으로 유명한 제봉 고경명,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한 사람으로 유명한 유학자 기대승 등도 소쇄원을 찾아와서 양산보와 교분을 했으며

양산보는 임종 직전에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 하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양산보의 후손들은 그의 유언을 지금까지 철저하게 따라서 소쇄원을 지켜왔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군이 담양으로 쳐들어와서 소쇄원에 불을 놓아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은 소실되었다.

이후 양산보의 손자인 양천운이 소쇄원의 복구를 시작해서 현손인 양경지 때에 ~~~

상당 부분 복구되었지만 수많은 조선 중기 학자, 문인들이 보고 즐기던 경치와 ~~~

정원이 소실되고 이후에 재건된 것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으므로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곳이 연못 두 개 중에 하나인 상지 연못이다.

제월당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촬영하고 ~~~

양산보 종가댁에 들려 살펴보았는데 ~~~

현판에 청심당이라고 적혀있고 지금도 종가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다.

0.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