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남한산성의 상징인 수어장대 모습
남한산성 소개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동경 127도 11분, 북위 37도 28분 지점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광주시는 약 80%가 산이며 나머지 20%가 평야부에 속하는 경작지이다. 높고 낮은 산이 많으며 좁고 긴 하천이 한강을 향하여 북 또는 북동쪽으로 흐른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였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성벽의 주봉인 청량산(497.9m)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연주봉(467.6m), 동쪽으로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았다.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성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고도 350m 내외의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광주시의 지질은 회색화강암과 편마암지대 이며, 지형은 광주산맥의 영향권 안에 있다. 토양은 편마암계나 화강암을 모암(母巖)으로 하는 사질양토(砂質壤土)나 양토(壤土)이다.
남한산성은 청량산(497m)을 중심으로 급경사로 된 화강편마암의 융기 준평원으로 내부는 약 350m의 구릉성 분지이다. 또한 산성리에서 엄미리에 이르는 지방도에 걸친 연변은 약 8km에 이르는 긴 협곡을 이루고 있다. 분지 내에는 고산지대인 관계로 하천의 발달이 미약하고, 산성천이 유일한 하천으로 침식곡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산정의 급경사면에 비해 북부 산록에는 경사가 하부로 갈수록 완만한 산록 완사면이 발달하고 있다.
한편 남한산성의 주봉인 청량산은 문형산497m, 매지봉(400m), 검단산(542m) 등과 남북으로 주부(主部)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산릉들은 북동 방향으로 연결되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 모양이 대략 남북으로 발달된 것은 부분적으로 좌수향(左手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연평균 기온은 인접 도시와 약4。C 정도 낮은 기온차가 나며, 연평균 강수량은 1,300mm∼1,400mm이며 맑은 날의 평균 일수는 약 204일로 봄과 늦가을에 많이 분포하며여 탐방객의 산성이용에 촉매제 역활을 하고 있다. 산간지역의 계절 변화는 평지보다 1∼2주 늦게 봄이 오고 일찍 겨울이 온다.
0. 2008년 05월 12일 석가 탄신일
석가 탄신일을 맞이하여 집에 만 있느니 밖으로 나가 가까운 곳에 사찰구경 겸 산행 할곳을 찾아 본곳이 남한산성 이였다.
신길동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462번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으로 갔다.
남한산성 입구의 분수대와 광장 모습
성남시 민속공예 전시관과 공연장(오래된 느티나무가 인상적이다)
남한산성 올라가는 길 옆 계곡의 모습(가뭄으로 물이 없네요)
지압장 표시석과 지압장 뜰 모습
(다른곳에 비해 지압장이 제법 넓고 시설이 잘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오늘이 석가 탄신일이라 약사사에 방문 하기로 하였다.
약사사 올라가는 길옆에 정성껏 쌓아올린 돌탑들이 한무리를 이루고 있다.
약사사 입구 모습
범종각의 모습
범종각 문안쪽 양옆에 서 있는 사대천왕 모습
약사사의 대웅전 모습
0. 약사사를 오르다 보니 중국의 태산에 있는 절을 오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제법 계단을 많이
올라갔다.
대웅전 뒤뜰에 있는 삼수자 지장보살 동상
부처님 동상에 많은 불자들이 예를 올리고~~
탱화와 미륵보살들 그리고 석탑 모습
대웅전 벽에 있는 천불상의 모습
불자님들의 참배 알리는 징
대웅전 뒤뜰에서 찬불가가 울려 퍼지고~~~
주지스님의 석가 탄신일의 설법을 듣고 난후~~~
점심 공양을 받기 위해 줄을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많은 불자들과 함께 오밀 조밀 앉아 점심공양을 받고~~~
이제는 산행을 하자~~
산행중 나무에다가도 " 부처님의 자비를 온누리에~~" 리본이 달려 있고~~
산행중 돌탑과 계단 앞에서 더우렁님이 포즈를 취하고~~
어!!! 여기도 절이 있네, 영도사라는 절 입구의 사대천왕 모습
부처님과 약사보살님의 동상 모습
정자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0. 사진 우측에서 오는길은 저번에 성남시 검단산 정상에서 본인이 오던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남문이 나온다.
다시 산행길은 시작되고~~
남한산성 성벽을 따라서 걷다가~~~
드디어 남한산성 남문을 만난다. 남문의 모습과 남문 해설판
성문을 들어서니 우측에 비석들이 도열하여 있고~~~
(아마도 이곳에 부임했던 관료들의 공덕비 인듯)
남한산성 안내도
성벽을 따라 더우렁님이 걷고 있다. ( 힘든가 보다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가고 있으니~~)
성벽길을 따라 걷다가 영춘정에서 잠깐 쉬고~~(영춘정 모습과 해설석)
성벽에 있는 암문 밖에는 막거리 장사가~~ㅋㅋㅋ
0. 암문이란 옛날에 성문으로 통행할수 없었던 아주 천한 사람이나 짐승들이 드나들던곳으로
지금의 개구멍의 의미가 있다.
옛날에 무엇하던 곳이였을까? 아무런 안내판이 없네~~~
청량당 설명 현판 만 찍고는 실수하여 사당을 찍지 못했다. ㅋㅋㅋ
청량당 앞에 있는 보호수 향나무
수어장대의 모습과 설명현판
수어장대 뒤편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 삼각점 표시석(좌측)
수어장대 옆에 있는 보호수 모습(소나무가지를 둥근 철파이프로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무망루와 해설석(무망루 옆에 있는 향나무는 이승만 대통령이 행차하여 심은 기념식수랍니다.)
매바위 모습과 해설석(매바위에는 "수어서대" 라는 암각이 적혀 있다)
이제는 행궁을 향하여 가자~~~
행궁 가는길에 술에 취해 앉으면 술이 깬다는 취성암과 해설석
행궁터 안내석과 안내석과 나란히 있는 옛날 관리의 공적비
행궁터 발굴 안내판
영녕전(위쪽)과 정전의 모습
정전이란 :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탁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 부)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영녕전이란 : 정전에 모시지 못한 역대 왕들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곳.
좌승당의 모습(14칸의 건물로 광주 유수의 집무실)
북행각 모습(왕 행차시 수행원들의 기거 한곳으로 왕과 밀접한 관계자가 머물던곳)
재덕당(왕의 修身 공간 혹은 제사 공간으로 사용)
재덕당 옆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내행전(왕과 왕비가 기거하던 곳)
남행각(왕의 수행원이 기거 하던곳)
침괘정(무기 제작소를 관리하던 집무실)
남한산성 행궁 복원 안내도와 기획단 사무실 전경
내려오는 길에 고풍스러운 음식점이 있어 한장 찍고~~
가까운 곳에 만해 한용운 기념관이 있다 하여 찾아가 보니~~
입장료를 받는군요.
만해 한용운 흉상
만해 기념관 앞뜰에 놓여 있는 조각상들~~
0. 이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가자.
남한산성 주차장에서 9번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입구까지 가서 오전에 타고 온 462번 버스를
환승하여 집에 도착.
석가탄신일에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만행한것을 감사하면서
모두다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