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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찾아 사람찾아/전시관, 박물관, 기념관, 수목원

서울 국립 현충원

by 어우렁 2009. 11. 18.

 

국립 현충원

 

 

국립 현충원 정문에 붙어있는 명패

국립 현충원 소개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군이 창설되어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여 오던 중 북한 인민군의 국지적 도발과 여수/순천사건 및 각 지구의 공비토벌작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서울 장충사에 안치하였다.

그러나 전사자의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육군에서 묘지 설치문제가 논의되어 1949년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서울근교에 묘지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6.25전쟁으로 묘지 설치문제는 중단되었고 각 지구 전선에서 전사한 전몰장병의 영현은 부산의 금정사와 범어사에 순국 전몰장병 영현 안치소를 설치,봉안하여 육군병참단 묘지등록중대에서 관리하였다.

계속되는 격전으로 전사자의 수가 점차 증가하여 육군에서는 다시 육군묘지 설치 문제가 논의되고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주관하에 묘지후보지 답사반을 구성하여 제1차로 대구지방, 제2차로 경주지구 일대를 답사한 결과 경주시 형산강 지류인 천북대안 일대를 육군묘지 후보지로 선정하고 추진하던 중, 군 고위층에서 현지를 답사하여 검토한 결과 지역적으로 편재되어 있고, 침수의 우려가 많을 것을 고려하여 타지역으로 후보지를 재선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져 일단 중지하게 되었다.

1952. 5. 6. 국방부 국장급 회의에서 육군묘지 설치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결과, 육군묘지를 설치하게 되면 타군에서도 각기 군묘지를 만들어 관리상 많은 예산과 인원이 소요되고, 영현관리의 통일성을 기할 수 없는 등 여러가지 폐단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육군묘지 설치문제는 일단 보류하도록 지시하고, 3군종합묘지 설치를 추진하되, 묘지의 명칭은 국군묘지로 칭할 것을 결의하였다.

1952. 5.26. 국방부 주관으로 국군묘지 후보지 선정을 위하여 3군 합동답사반을 편성하고, 동년 11. 3. 군묘지설치위원회를 구성한 후 ‘52.11월부터 ’53. 9월까지 11개월 동안 7차에 걸쳐 10개 지역을 답사하였다. 답사 결과 동작동 현 위치를 국군묘지 후보지로 선정하여 ’53. 9.29.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군묘지 부지로 확정하고 ’ 54. 3. 1. 정지공사를 착공한 이래 3년에 걸쳐 묘역 238.017㎡ 을 조성하고, 그 후 연차적으로 68년 말까지 광장 99.174㎡, 임야 912.400㎡ 및 공원행정지역 178.513㎡을 조성하였다. 1955. 7. 15. 군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가 발족되고, 이어서 1956. 4. 13. 대통령령으로 군묘지령이 제정되어 군묘지 운영 및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어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군무원이 안장되고 덧붙여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안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6.25 전쟁으로 발생한 많은 전사장병 처리를 위해 지금까지 군인위주로 이루어져 왔던 군묘지 안장업무가 1965. 3. 30. 국립묘지령으로 재정립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게 되어 그 충의와 위훈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계승시킬 수 있는 겨레의 성역으로서 국립묘지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2005.7.29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 제7649호, 시행 2006.1.30"에 의거 동작동 국립묘지의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자에 포함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강과 과천 사이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 공작봉(孔雀峰)기슭에 위치해 있다.
공작봉은 관악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내려 불끈 솟아올랐다가는 엎드리는 듯 줄기와 봉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면서 늠름한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양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
사방의 산은 군인들이 모여 아침 조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하의 여러 갈래 물줄기가 교류하여 생기가 넘치는 명당자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체의 형국은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孔作張)이며,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이다.
즉, 좌청룡(左靑龍 )의 형세는 웅장한 산맥의 흐름이 용이 머리를 들어 꿈틀 거리는 듯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상이고, 우백호(右白虎)의 형세는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며 전후좌우로 솟은 사방의 봉우리와 산허리는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줄지어 서 있는 형상과 같다.
정면 앞산을 바라보면 주객이 다정하게 마주앉은 모양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마치 물소뿔 모양이며 한강물은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들어 마치 명주 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리며 공작봉을 감싸 흘러 내려가고 있다.
이와 같이 국립서울현충원이 위치한 공작봉은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渴形象)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0. 이번주 에는 국립 현충원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아들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실질적인 군 생활을  시작하니 오늘  방문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며 어제 현충일이라

    더욱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현충원 정문에 걸려있는 현충일 기념 프랭카드

 

현충원 입구에 조화를 파는 행상들의 모습

 

현충원 정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추모상

 

현충원 안내 이정표들

 

기념관터 표시석과 조형물들

 

 

 

 

 

 

 

 

 

호국종의 모습

 

현충문 모습과 현충문 입구에 서있는 의장대 모습

 

 

현충탑 모습

 

현충탑의 좌, 우 조각상 모습

 

 

현충탑에  새겨진 명문과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들

 

 

현충탑 뒤 영현실에 있는 전사자 명패 보관소에 있는 조각상

 

전사자 위패가 모셔져 있는 모습과  유족분들이 갔다논 사진과 조화들

 

 

 

영현실에 있는 화, 목, 지, 해신상의 모습중 화신상과 지신상 모습

 

 

 사병들의 묘역 모습

0. 사병들의 묘역은 현충원 정문 입구에 들어서 조금 올라가면 제일 먼저 접 할수 있다.

 

장교들의 묘역 모습

 

애국지사 묘역 입구 모습

 

충열대 모습과 충열대 해설판

 

 

애국지사의 묘(부인도 같이 합장되어 있음)

0, 장교들의 묘역은 사병들의 묘역 위에 안치되어 있다.

 

애국지사 위패를 모셔놓은곳

 

임시정부 각료들의 기념 제단

 

임시정부 각료들의 묘와 임시정부 수반들의 묘 모습 

 

 

무명 독립군 위령탑의 모습

 

경찰 전사자 총혼탑 모습

 

경무관 급 묘역

 

경위급이상 묘역과 일반 경찰의 묘역 모습

 

 

"호국지장사" 라는 절 입구에 있는 수령 35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 모습

 

호국지장사의 모습

 

지장사 철불좌상 안내판과 철불좌상을 모시는 누각과 철불좌상의 모습

 

 

 

호국지장사에 있는 오래된 석등과 5층 석탑, 그리고 천불상의 모습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분 묘소 모습

 

박대통령 서거 당시 운구하던 영구차와 설명문

 

 

영구차 앞에 있는 연못 "공작지" 의 모습

0. 현충원이 있는곳이 관악산 공작봉으로 현재 공작봉 정수리에 박대통령 묘소가  있고 바로 그밑에

   공작지란 연못이 있다.

 

장군 묘역 입구 모습 

 

장군들의 묘역 모습(부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동작릉 안내판과  동작릉의 모습, 그리고 신도비(맨아래)

 

 

 

 

이승만 초대 대통령 내외분 묘소 모습

 

현지 임관 전사자 추모탑과 추모 명문패

 

 

육사 7기 특별 동기탑 모습과 설명 명패(맨 아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모습

0. 이 탑에는 6.25 당시 포항지구에서 전사한 학도의용군 김춘식 등 48위의 무명용사 유해가 반구형 석함분묘에 안장되어 있다. 6.25가 발발하여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자 약 5만으로 추산되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구국전선에 자진 참전하여 포항지역을 비롯한 각 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7,000여 명이 전사하였으나 시신이나 무덤 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이곳에 모셔진 48위는 당시 포항전투에서 중대급 규모의 학도의용군이 괴뢰군 전초부대와 분투하다가 전몰하여 당시 포항여자중고등학교 부근에 가매장되어 있었으나 ’63. 9. 24. 국무회의에서 이들을 국군묘지에 안장할 것을 의결 ’64. 4.25. 대한학도의용군 동지회 주관하에 국군묘지 제5묘역에 안장하였다가 ‘68. 4월 현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에 이장하게 되었다. 이 탑은 1954. 10. 30. “무명용사비”로 건립하였으나 1956. 1. 16. 대표 무명용사 1위를 이 비에 안장하면서 “무명용사탑”으로 개칭하였다가 1968년 4월 대표 무명용사 1위를 납골당으로 이장하고 무명용사탑을 현 위치로 이설한 후 학도의용군 무명용사 영현 48위를 이 탑 뒤쪽 반구형 석함에 이장함과 동시에 제단도 이곳으로 옮겨 “학도의용군의 묘”라 표기하고 탑의 명칭도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으로 개칭하게 된 것이다.
이 탑은 3개의 아치형의 문형으로 구성되어 중앙의 큰 문형 속에 무명 용사탑이 세워져 있고 탑 뒤쪽 중앙에는 사각의 화강암 석함으로 된 반구형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다. 이 탑의 석재는 오석이고 그 표면은 황등석이며 아치형 문형은 화강석이다. 탑의 높이 3.6m, 폭 8m, 중앙 문형의 높이 5.5m, 좌우 문형의 높이 3m, 화강석 바닥면적 165㎡이다.
탑의 전면에는“무명용사영현” 후면에는“이곳에 겨레의 영광인 한국의 무명용사가 잠드시다”
단기 4288년 7월 15일 대한민국
단의 앞쪽 제단 전면에는 “학도의용군의 묘”라고 각각 새겨져 있다.

 

정문으로 나가는 길에 왠 "부산직할시 공원"????

(아마도 부산시에서 출현한 기금으로 조성한 공원 같다,)

 

0. 오늘 유익한 하루였다고 생각된다.

    이름 석자 남겨놓고 떠난님도 감사하지만 이름없이 조국을 위하여 사라져간 많은 애국 애족지사님과 용사들에게 깊이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몇해전 이곳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쓴 시를 이곳 영렬들에게 받칩니다.

 

 

너희들이 조국을 아느냐!

 

너희들이 조국을 아느냐

6월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포열속에서

6월의 신록보다

더 짙은 붉은 피를 뿌리며

산과 들을 헤메고

강을 건너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냥

하나의 생명을

허공에 던져 버려야 했던 것을

 

너희들이 조국을 아느냐

내가족의 사랑보다

더 뜨거운 조국애를 위해

동포애 보다

더 뜨거운 전우애를 위해

추위와 더위를 참아가며

굵주림에 허덕이는 배를 움겨쥐고

그들은 그렇게 시작했고

그들은 그렇게 끝이 난다해도

그냥

하나의 육신을

흙속에 물속에 던져 버려야 했던 것을

 

너희들이 조국을 아느냐

압록강 강변에서

해산진 어구에서

죽음보다 더 귀한

명예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한과 분노를 가슴에 쓸어담고

떨어지는 꽃잎처럼

삭풍에 낙엽처럼

그냥

홀로 쓸쓸히

쓰러져간 그들의 영혼을

 

너희들이 조국을 아느냐

4월의 함성속에

무너진 정권을

5월의 핏자국마다

피어난 민주의 꽃을

자유와 진보가 물결치고

개혁과 혁신이 용솟음치는

이 시대에 젊음들을

이 시대에 군상들을

그냥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거칠고 힘든 삶들을

 

너희들이 조국을 아느냐

세월이 흐른뒤

6월의 어느날

동작동 골짜기에

한줌의 재가 되어

지난날의 인고의 시간과  대화하는

수천 수만의 위령들이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그냥

하나의 비석이 되어

오늘에 서 있는 모습을

 

 

어느해 인가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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