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소수서원
0. 소수서원 소개
최초로 국학의 제도를 본떠 선현을 제사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한 서원이었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유학자인 안향의 사묘를 설립한 후 1543년 유생교육을 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경상도관찰사 안현이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방책을 보완
했다. 이 시기의 서원은 사묘의 부속적인 존재로서 과거공부 위주의 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황은 교학을 진흥하고 사풍을 바로잡기 위해서 서원 보급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소수서원은
1868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존속했다.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물 제59호
숙수사지당간지주·국보 제111호 회헌영정 등과 141종 563책의 장서가 남아 있다.
소수서원 출입구 모습
소수서원에 관한 안내글과~~~
소수서원 배치도가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출입구에 들어서면~~~
당간지주가 보이는데~~~
신리시대때 숙수사라는 사찰의 당간지주이며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당간지주 옆으로 내려가면 죽계천이 흐르는데~~~
죽계천 돌다리를 건너면서 한컷 했다.
죽계천을 따라 걷다보면 정자를 만나는데~~~
이름도 멋진 취한대라고 한다.
죽계천 건너편으로 소수서원 입구가 보인다.
죽계천의 모습을 촬영하고~~~
숲길을 가면서~~~
죽계천의 돌방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운치있는 다리를 촬영하는데~~~
여인 한분이 걸어오는 모습이 아름다워 앵글에 담는다.
박물관으로 가는길에~~~
광풍정이라는 정자를 촬영하는데~~~
퇴계 이황선생이 명명한 광풍대가 있던 곳에 광풍정을 2002년에 세워다.
소수박물관이 보이는데 관람은 하지않고~~~
소수사원으로 발길을 돌려다.
소수서원 뒷문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시한수가 바위에 적혀있고~~~
뒷문 입구에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차량한대가 서있다.
문안으로 드러서니 여러 부속물들이 있는데~~~
이곳에서 발굴된 숙수사 유물들이라고 한다.
관리사무소 겸 충효교육관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한적한 곳에 작은 집한채가 있는데~~~
고직사라고 옛날에 소수서원을 관리하는 관리인 살던 집이라고 한다.
이제 이문안으로 들어가면 소수서원의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현위치에서 소수서원의 배치도를 촬영하고는~~~
먼저 영정각을 촬영하여 보았다.
영정각에는 중앙에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와 주자학을 고려말때 도입해온 안향이 있으며~~~
왼쪽에는 미수 허목과 오리 이원익을 모셨으며~~~
오른쪽에는 이소수서원을 창건한 신재 주세봉과 한음 이덕형이 자리잡고 있다.
뜰앞에는 ~~~
당시 해시계 역할을 하였던 일영대가 반은 부서져 있는듯 하다.
영정각에 선인들을 제사 지낼때 사용하던 재기를 보관하던 전사청이 있고~~~
책들을 보관했던 장서각도 있다.
긴 돌기둥과 짧은 돌기둥이 있는데 긴 돌기둥은 정료대라고 밤에 서원의 뜰을 ~~~
밝히는 역할을 하였고 짧은 기둥은 손씻는 대야를 올려놓은 관세대라고 한다.
당시 기숙사였던 직방재가 있고~~~
담ㄴ옆에 있는 배치도를 보니~~~
문성공묘라는 곳이 있는데~~~
그앞에는 커다란 돌맷돌 아래짝만 홀로 있고~~~
회헌 안향선생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에는 출입문이 닫여있어 안을 볼 수가 없었다.
유생들이 공부하는 장소로 강학당이라고 하면 백운동이라는 간판도 있다.
지락재, 앙고재라고도 한다.
학구재 또는 동몽재라고도 하는데 지락재와 같이 공부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학구재에 있는 현판
문밖으로 나와보니~~~
문이름이 지도문이다, 의미가 깊다.
문박에는 경렴정이라고 하는 정자가 있고~~~
정자안에는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다.
경렴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죽계천가에는~~~
큰바위에 공경 할 "경" 자를 세겨놓은 옛 선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죽게천변과 소수서원 인근에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참 많다.
죽계천변 취한루를 바라보면서~~~
소수서원 입구에서 자세를 잡아보고 서원을 떠난다.
0.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