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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찾아 사람찾아/전적비, 기념비, 추모비

축석령 전적비

by 어우렁 2017. 9. 5.



축석령 전적비

(김풍익중령 전적비)


0. 김풍익 중령은 1921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41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광복 후 육사

   제7() 입대, 1948년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50626일 육군 포병학교 교도 대대장

   으로 의정부 축석령 전투에 참가하였다. 1950626일 북괴군 3사단이 전차 40여 대를

   몰고 포천방면에서 남하, 축석방어선이 무너지자 당시 포병학교 교도 대대장이었던 김풍익

   소령은 1개 분대 분대원 6명 및 105미리 야표 1문을 직접 이끌고 축석령이 잘 보이는 고개

   밑으로 16km까지 전진, 직접 조준사격 준비를 완료하였다. 때마침 커다란 굉음과 함께 축석령

   고개를 돌아 내려오는 적전차를 발견한 결사대는 100m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착하게

   직접 사격을 실시하여 선두의 적전차를 파괴하였으나, 후속하는 전차의 집중포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전원 산화하고 말았다.


축석령 전적비에 대한 안내문



김풍익중령의 전적비 모습



이 전적비는 의정부시에서 부지를 제공하였고 군장병과 민간인 성금등으로~~~



1988년 6월 착공하여 그해 10월에 준공 하였다.



군인의 청동상과 함께 당시 야포로 전차를 부쉬는 부조가 있으며~~~


야포와 함께 산화한 장병들의~~~



명단이 동판에 새겨져 있으며~~~ 



건립 취지문도 있다.

0. 여기까지 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야포로 탱크를 부쉬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는 행위이다.

     한대정도야 가능 하겠지만 대부분 탱크는 무리를 지어 움직이기 때문에 다음 탱크에

     노출되어 바로 희생되기 때문에 누구도 엄두 낼 수 없는 행위를 김풍익중령은 목숨을 걸고

     적의 전진을 늦치기 위해 희생을 각오한 행동이였기에 육군포병에서 이분을 포신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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