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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물따라 /충청. 호남, 제주

남연군 묘와 가야사지

by 어우렁 2018. 2. 14.



남연군 묘와 가야사지


0. 남연군 묘와 가야사지에 관한 이야기

      가야사는 덕산면 가야산 옥양봉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던 국내 4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덕숭총림으로 지정된 수덕사보다 규모가 큰 사찰로 전해지는데 가야사 터가 2대에 걸쳐 왕이

   나온다는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믿은 흥선대원군이 자기 부친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기

   위해 1844년에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던 천년고찰 가야사를 불테워 버리고 불에 타 사라진

   가야사 터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863년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입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뒤 섭정을 하던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하니 독일 상인 오페르트라는

   자가 국내와 통상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자  우리나라사람이 조상들의 무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시신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당시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발굴해 시체와 부장품을 볼모로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으나 묘가 워낙 견고해서 도굴을 못하고 이 사건을 보고받은 흥선대원군의 분노로 서양인

   들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물론이고 쇄국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독일 상인 오페르트라는 패륜도 대단한 패륜을 저질러으며 아마도 근대기에

   일어난 사상 초유의 시신 납치단이 된 남연군 묘 도굴사건을 일으킨 당사가가 되었습니다.


남연군 묘에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남연군 관련 비문


비문 안내문


비문의 모습


비문이 있던 곳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천년고찰 가야사 터 이다.


가야사지 안내문






덩그러니 넓은 공터만 자리잡고 있다.


가야사 터에 남연군의 묘가 자리를 잡았다.


남연군 묘의 하단 모습과 비석.


남연군 묘 안내문


남연군 묘을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작은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남연군 묘의 모습


묘 앞에는 촛대를 상징하는 석기둥 두개와~~~


양 두마리~~~


석등 한개가 자리잡고 있다.


묘지는 관리가 잘되어 있으며 ~~~


남연군 묘에서 가야사 터를 촬영하였는데 일부는 남연군 묘자리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남연군 묘 뒤쪽으로 가야산이 자리잡고 있다.


남연군 묘를 떠나면서~~~


나의 모습 남기고~~~


남연군 묘에서 내려와 상여 집에 들러 보았는데 ~~~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묘를 이곳으로 운구하면서 사용되었던 상여를~~~


보관하는 집으로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이고 이것은 모조품 이다.


저수지에서 내려다 본 남연군 묘의 모습.

0.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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