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군 묘와 가야사지
0. 남연군 묘와 가야사지에 관한 이야기
가야사는 덕산면 가야산 옥양봉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던 국내 4대 총림 가운데 하나인
덕숭총림으로 지정된 수덕사보다 규모가 큰 사찰로 전해지는데 가야사 터가 2대에 걸쳐 왕이
나온다는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믿은 흥선대원군이 자기 부친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기
위해 1844년에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던 천년고찰 가야사를 불테워 버리고 불에 타 사라진
가야사 터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863년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입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뒤 섭정을 하던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하니 독일 상인 오페르트라는
자가 국내와 통상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자 우리나라사람이 조상들의 무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시신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당시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발굴해 시체와 부장품을 볼모로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으나 묘가 워낙 견고해서 도굴을 못하고 이 사건을 보고받은 흥선대원군의 분노로 서양인
들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물론이고 쇄국정책을 더욱 공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