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장릉
0.영월 장릉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
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으나
무인석은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
(配食壇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
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배견정 拜鵑亭)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릉 [莊陵] (두산백과)
장릉입구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표시석이 있는데 이곳 장릉과 조선왕릉을 말한다.
매표소 입구 모습
정문 모습
밖에서 본 장릉안 정자 모습
장릉에 들어가서 첫번째로 보이는 건물은 ~~~
단종의 묘를 찾아낸 영월군수의 충신 비각이다.
낙촌비각 모습
비각 옆으로 장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 길따라 가면서~~~
아래를 내려보면서 사진 한장찍고~~~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장릉을 보고나서는 이길로 내려간다.
장릉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글씨가 전혀 안보인다.
남양주 문화원에서 기증한 청령송이라는 소나무를~~~
배경에 넣고 장릉 가는 길을 카메라에 잡아본다.
장릉에 도착하여 장릉의 전경을 앵글에 담아보고~~~
아래로 내려가~~~
위에서 보이지 않았던 장릉의 유래를 촬영한다.
배식단이라는 곳을 카메라에 담는데~~~
단종을 위해 목숨 바친분들의 합동 재단이다.
배식단 앞에는~~~
장판옥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단종을 위해 목숨 바친분들의 위폐를 모신 곳이다.
홍살문을 따라 들어가면~~~
영천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아직도 그곳에는 물이 있고 또한 돈도 있다.
우물의 모습을 앵글에 담고~~~
전체 모습도 같이 담아본다.
영천이라는 우물 옆에는~~~
작은 수라간이 있어 제사를 지내는데 음식을 장만하고~~~
그옆으로 조금 큰 건물이 있는데~~~
정자각이라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내부의 모습은 단출하다.
지방이나 축문을 태우는 곳도 그옆에 있다.
정자각과 장릉을 배경으로 사진촬영 한번하고~~~
수복실이라는 곳을 갔는데~~~
릉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잠시 기거 하는 곳이다.
다음으로 들린곳이 단종비각이 있는 곳이다.
단종비각을 들여다 보니~~~
의외로 단종대왕으로 표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장릉이 있게 한 ~~~
엄흥도의 정여각을 살펴본다.
당시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포고령애도 시신을 수거하여
자기 선산에 매장한 그의 용기가 정말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장릉을 살펴보고 나오는 입구에 그럴듯한 한옥이 있는데~~~
이곳은 능을 지키는 참봉과 수호군이 머무는 곳으로~~~
제법 커다랗게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참봉 1인 머무는 곳과~~~
수호인 9인이 머무는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0.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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