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숭의전
0. 해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숭의전은 조선 건국을 한 이성계가 1397년(태조 6)에 태조의 명으로 묘(廟)를 세우고,
1399년(정종 1)에는 고려 태조와 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경 왕)·충렬왕·공민왕의 7 왕을 제사 지내고, 1423년
(세종 5)과 1452년(문종 2)에 중건하였다. 문종은 이곳을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이와 함께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
(鄭夢周) 외 15인을 제사지내도록 하였으며,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중종은 1512년(중종 7) 여름에 작은 소를 잡아 제사 지내게 했고, 선조 때는 고려조 왕 씨(王氏) 후예로 참봉을 제수
하여 전각(殿閣)의 수호와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영조는 1731년(영조 7) 승지를 이곳에 보내 제사 지냈으며, 1789년
(정조 13)에는 이 건물을 고쳐 지었다. 처음에는 사(使, 종 3품), 수(守, 종 4품), 영(令, 종 5품), 감(監, 종 6품), 여릉
참봉(麗陵參奉, 종 9품)의 관리를 1인씩 두었으나 뒤에 와서 사와 수는 없앴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되었다. 그 뒤 1973년 왕 씨 후손이
정전을 복구하였고, 국비 및 지방 보조로 1975년 2월에는배 신청 13평을, 1976년 1월에는 이 안청 8.7평, 이듬해
2월에는 삼문(三門)을 신축하였다.
입구에 있는 관광 안내판과 평화누리길 안내판 모습
숭의전 올라가는 입구에 임금의 물이라는 뜻의 어수정이라는 샘터가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5~10분 정도 올라간다.
숭의전은 평화누리길의 11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숭의전의 안내판을 촬영하고~~~
숭의전 전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숭의전 앞마당에 있는 숭의전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촬영해 보고~~~
조선이 숭의전을 만들게 된 이유가 적혀있다.
숭의전이 왜 이곳에 세워지게 된 이유가 있다.
숭의전 역사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 보고 숭의전으로 들어선다.
뜰안으로 들어서니 옆으로 문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문인 것 같다.
앙암 재는 제례 때 사용하는 제례 물건들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머무는 곳이다.
앙암재 안에는 태조의 동상 사진이 모셔져 있는데 실물은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특별히 단청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문을 통해 옆으로 이동하니~~~
전사청이 있는데 전사청은 제수를 준비하는 곳이다.
전사청 옆에는 숭의전이 있는데 이곳이 고려 4대 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을 모시는 곳이다.
숭의전 안은 정면에 태조의 상의 있고~~~
좌우로 두상과 ~~~~
한상이 준비되어 있다.
입구에는 방문록이 있어 한자 쓰고~~~
이 안청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곳은 숭의전 위폐를 모시는 곳이다.
끝으로 배 신전을 들려 보았는데 이곳은 고려 충신 16인을 모신 곳으로 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 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의 위폐가 있는 곳이다.
벽에 사진 한 장이 걸려 있는데 이사진은 1789년 마전 군수 한문 홍이 잠두봉 절벽에 새겨 놓은 글로
고려의 영화와 몰락 그리고 앞날을 글로 쓴 것이며 내용은 위 이야기 사진에 있다.
삼문을 나서면 길 건너 시 한수가 보이고~~~
느티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삼문에서 바라보면 좌우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는데~~~
왕 씨 후손이 심어다는 일화가 있으며~~~
국가에 애경사를 알린다는 나름에 전설도 가지고 있는 나무이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숭의전 담 옆에도 오래된듯한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0.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