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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찾아 사람찾아/전적비, 기념비, 추모비

호랑이 유격대

by 어우렁 2020. 11. 7.

호랑이 유격대

0. 해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약 3개월(80일) 정도 활동하면서 총 4회에 걸쳐 유격 작전을 진행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을 침략하자,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계급장과 군번 없이 전선에 투입된다. 6월 26일 포천방면에서 남하하는 인민군을 저지하는 중

  후퇴하게 되고, 6월 27일 밤 육사 뒷편 불암산을 기습하고 92고지 능선을 연결한 F고지 중심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28일 아침 인민군이 재공격해오지만 11시 경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덜어졌지만 집결지 조차 명시되지 않았으며, 공격하는 인민군을 직접적으로 막아낼 힘 조차

  없었다. 이에 인민군이 우회하여 공격할 리는 없다고 판단하여 철수하지 않고 불암산으로 가서

  대기하게 된다. 김동원 유격대장의 지시에 따라 조사한 유격대의 무기현황은 M1소총 15정, 카빈

  소총 3정, 기관단총 2정, 경기관총 1정, 그리고 수류탄 5발과 각종 실탄 3천여 발이었다.

  유격대원들은 빈 병과 헌 솜뭉치를 준비하여 화염병을 만들었고, 각종 줄을 준비하여 신호방법을

  마련하였다. 은신처를 마련한 후 유격대는 지휘체계를 세웠다. 김동원(생도1기, 유격대장)이 대장에

  선출되었고, 제1조 조장에는 조달 생도, 제2조 조장에는 박인기 생 도, 그리고 제3조 조장에는

  김만석 중사가 임명 되었다. 또한 정보책으로 홍명집 생도를 임명하여 불암사의 주지스님과 접촉을

  전담하는데, 윤 용문주지는 주변 마을의 믿을 만한 신도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유격대에

  전달하였다. 6・25 전쟁 참여 시 유격대 자체적인 수칙도 제정한다. 구체적인 수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유격대는 전원이 결사의 각오로 유격 활동에 임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후일에 전쟁을

        기피했다는 누명을 벗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겠다.

둘째, 우리 유격대는 병력과 그 장비의 규모로 보나 본래의 목적으로 보나 적 병력의 살상이나 보급품,

        기타 시설 장비의 파손보다는 적 교란을 주임무로 한다. 그래서 우리 유격대는 가능한 유격활동의

        범위를 넓혀 적 병력의 분산과 유인으로 그들의 일선투입을 적극적으로 방해할 것을 다짐한다.

셋째, 우리 유격대는 자체 진지를 불암산과 그 북방 12키로미터의 수락산 및 동북방 9키로미터의

        국사봉에 두고 그곳을 전진하면서 적의 수색을 피하기로 하고 또한 그곳에 잠입한 반공인사와

        접촉하여 그들의 지원도 받기로 한다.

넷째, 우리 유격대는 서로 강요당해 집결된 집단이 아니므로 기탄없는 의견과 토론은 환영하지만

       일단 결정된 사항에는 복종할 것을 다짐하며 만약 이탈자나 결정을 어긴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을 천명한다.

                          

             만화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한국전쟁때 있었던 일로 ~~~

육사생도 13인과 현역 7인이 만들어 낸 ~~~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이야기이다.

그들은 네차례에 걸친 전투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 주었다.

지금은 작은 전적비로 그때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지만~~~

우리모두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애국애족하는 마음을 깊이 알고 행하여야 된다고 생각이 든다.

0.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