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생가
0. 주소 : 경기 여주시 명성로 71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명성황후 기념관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하였으며
명성황후(明聖皇后, 1851~1895) 생가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자료 사진은 기념관 안에 있는 것을 촬영 하였다.
전시실은 면적 520㎡로 명성황후와 고종의 어진 등의 ~~~
유물·같은 시기에 활약하였던 여흥 민씨들의 유물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한다.
명성황후의 가례 모습.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당일 일본인이 사용했던 일본도(복제품),
시해장면을 재현한 매직비젼 영상물 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외적과 싸우는 모습도 만들어져 있다.
기념관 옆에 있는 161석의 공연장에서는 ~~~
명성황후와 관련된 영상물을 단체 관람객들에게 상영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명성황후의 개화사상과 민족 자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
명성황후 조각공원을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가 옆에 “명성황후탄강구리” ~~~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어 ~~~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옆에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 선생의 신도비가 있다.
생가의 문이 잠겨 담 넘어로 생가를 들여다 보았다.
감고당으로 가면서 감고당 앞에 있는 시설물을 촬영하고~~~
감고당의 모습이다.
감고당은 인현황후와 명성황후가 잠시 기거 하였던 집이다.
원래는 서울 안국동에 있었던 것을 도시계획에 따라 이곳으로 이전 설치 하였다.
전형적인 사대부 집 주택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솟을대문과 ~~~
황후의 서재도 볼 수 있으며~~~
약간의 살림살이도 볼 수 있다.
감고당 뒷편에는 명성황후의 소원바위가 있어 마지막 촬영을 하고 관람을 마친다.
0.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