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유달산 산행일기
(장노시방 여든 네번째 산이야기)
유달산 정상 표시석
0. 유달산 소개
높이 228m. 산정이 가파르고 기암절벽이 첩첩이 쌓여 있어 호남의 개골산(皆骨山)으로도 불린다. 산의 동쪽과 남쪽의 완경사 산록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산정에서는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과거 외적을 경계하던 봉수대가 2개 남아 있다. 약 100m 내려오면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와 노적봉이 있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둔 것처럼 가장해 적을 속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기슭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조각공원이 있으며, 그 옆쪽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난(蘭)공원이 있어 유달산의 운치를 더해준다. 그밖에 대학루·관운각·소요정·유선각·달성각과 유달사·수도사·관음사 등의 사찰이 있다. 유선각(儒仙閣)은 1932년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해 건립했으며, 처음에는 목조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콘크리트로 개축했다. 또한 이충무공 동상, 어린이 헌장탑과 놀이터, 4·19기념탑, 충혼탑,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바다에 임해 있는 서쪽 산록에 유달해수욕장이 있다.
0. 2009년 8월 16일 산행
아침 7시 10분 영등포역 발 무궁화 열차를 타고 5시간이란 긴 여행끝에 목포역에 도착
하였다. 유달산은 목포역에서 빤히 보이기 때문에 큰길을 건너 무작정 위로 올라가면
먼저 노적봉이 나오고 바로 유달산 입구가 있다.
목포역 모습
목포역 광장에 버스 정류장쪽에 서있는 광장에 대한 해설판
노적봉 표시 입석과 여러각도에서의 노적봉 모습
노적봉 다산목 안내판과 다산목 모습
노적봉 가까운곳에 있는 목포의 새천년시민의 종 모습
유달산 입구에서
목포개항 110주년 기념석에서
복바위의 모습
이순신 장군 동상과 앞의 정원 모습
대학루 모습
대학루에서 바라다 본 노적봉 주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포대 안내석과 오포릐 모습 및 안내판
유달산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세계평화비와 어린이 헌장 탑
가수 이난영씨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모습
0. 이난영에 대해서
전라남도 목포시 출신이다. 본명은 이옥례(李玉禮)이나 호적에는 이옥순(李玉順)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3년 목포공립여자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졸업을 하지 못하는 등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랐다.
1932년에 목포에서 극단 태양극장에 입단하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난영이라는 예명도 이 무렵 얻었다. 1933년에는 태평레코드에서〈시드는 청춘〉을, 오케레코드에서는 〈향수〉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데뷔했다. 1943년까지 오케레코드 전속가수로 활동하며 오케의 간판 스타 역할을 했다.
1935년에 일제 강점기 최고의 인기곡이자 한국 가요사의 불후의 명곡으로도 불리는 〈목포의 눈물〉을 발표하면서, '가왕(歌王)'이라 불릴 만큼 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비음이 섞인 경쾌한 창법이 특징이며, 트로트와 신민요를 비롯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 모두 능했다.
1936년에는 오카 란코(岡蘭子)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하였고, 1937년에 가수 겸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하였다. 이난영은 천재적 음악인이었던 김해송과의 결혼 이후 남편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면서 전성기를 보냈다. 이난영의 오빠 이봉룡도 김해송의 지도를 받아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에는 무대 활동에 주력하면서 김해송이 이끄는 KPK악극단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김해송이 실종되어 혼자 자녀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1958년 동료 가수 남인수가 이혼한 뒤로는 사실혼 관계로 지내다가 1962년 남인수가 사망하여 다시 혼자가 되었다. 1963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딸들이 결성한 그룹 김시스터즈와 함께 공연을 하였고, 1965년 삼일절 기념공연을 마지막으로 서울 중구 회현동에서 사망했다.
사망하기 1년 전인 1964년에 이난영의 일생을 극화한 《님은 가시고 노래만 남아》가 제작되었다. 목포를 상징하는 가수로서 목포에서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이난영기념사업회가 조직되어 있기도 하다.
달성각 모습
투구바위 모습
유선각과 시비 모습
류선각에서 본 삼학도의 모습
일등바위를 가기전에 달성사를 가보자.
달성사 가는길에 바위에 새겨져있는 글씨들~~~
"누가 했을까? 혹시 이것도 일본인들이 해 놓은것이 아닐까? 일본 냄새가 난다."
돌계단의 어느 하나는 역사적 유물 같은데 여기에서 돌계단의 일부가 되었다.
달성사로 내려가는 길
담장넘어 달성사를 슬쩍 홈쳐보고~~~
달성사의 담장이 무슨 요새와 같다.
달성사 내부 모습
"달성사의 타종치는 모습과 종소리는 목포 8경중 하나다."
0. 목포 8경
1.입암반조 - 갓바위의 저녁 노을 2.용당귀범 - 용머리를 돌아오는 돛단배 (고하도)
3.금강추월 - 영산강의 가을 달빛 4.아산춘우 - 영암 쪽 아산에 내리는 봄비
5,유산기암 - 유달산의 기묘한 바위 6.고도설송 - 고하도의 눈 덮인 소나무
7.달사모종 -달성사의 저녁 종소리 8.학도청람 - 맑은 날 삼학도의 시원한 바람
달성사 구경을 끝내고 다시 고래바위 옆길로 유달산 정성을 향해 간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옆에 종바위도 있다.
하루 일정이 박박하니 소요정과 이등바위는 다음기회로 미루고 일등바위를 향해가자.
애기업은 형상의 애기바위와
고하도 앞바다에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팔짱끼고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는
낚시꾼 모습의 조대(낚시터)바위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관운각의 모습
나막신 바위를 지나고~~~
입석바위를 지나니~~~
마당바위에 도착하여 사진한장 찍었다.10년전에는 여기까지 왔다가 내려 갔다.
마당바위에서 건너다 보이는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에 세겨져 있는 일본식 불상 모습
0. 일본식으로 오른쪽부터 읽게 새긴 ‘부동명왕(不動明王)’ 네 글자가 선명하다.
화염 형상의 얕은 부조에 둘러싸인 왼편 불상은 대일여래가 악마를 항복시키기 위해 분노
한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으로 오른손에 항마(降魔)검을 지니고 왼손에는 쇠줄을 쥔 전형적
인 부동명왕의 도상이다. 부동명왕은 대일여래의 사자로서 밀교의 5대 명왕 중 하나이다
0.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시조로 숭앙된다는 홍법대사상 이다.
유달산 정상에 일본 밀교의 불상이 버티고 서서 매일같이 목포 시내를 내려다보는 셈이다.
마당바위에서 내려와 일등바위를 향해 다시 올라간다.
일등바위 올라가는 계단에 일본 국화 문장을 한 석재가 계단의 일부가 되어 누워 있다.
올라와서 본 일등 바위의 모습
유달산 정상석을 뒤로하고 한장 찍었다.
정상에서 바라다 본 목포 시내 모습
유달산 이등바위쪽 산의 모습
유달산 정상에서 본 바다쪽 모습과 해설판
이제는 내려가자!!!
내려오는 길에 외로이 서있는 유달산 표시석을 보고~~~
0. 유달산은 산 전체가 공원화 되다시피 되었다. 정상까지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흙을 밟을
일이 별로 없다. 허지만 상당히 가파른 구간이 제법 있어 산이 높지 않다고 우숫개 보면
큰코 다친다. 그 만큼 힘이 제법 들고 아기자기 한 맛도 있다.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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