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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물따라 /해외여행

송나라 거리(중국여행 2일차)

by 어우렁 2017. 8. 11.



송나라 거리(중국여행 2일차)



송나라 거리는 송성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크기가 우리나라 일개동의 3분의 1 정도 된다.


송성가무극을 관람하고 나와서 송나라 마을 재연 햔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


먼저 산으로 만들어 놓은 계단을 올라가 장군이 자리잡고 있는 성벽에서 포즈를 취했다.


성밑을 바라보니 많은 인파가 보이고 ~~~


다른 한쪽에서는 관가에서 포청천이 좌인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포청천은 송나라 사람으로 실존 인물이며 부패와 부조리를 상,하구분없이

척결해온 청백리로 자는 희인(希仁), 이름은 증(拯)으로 청천(靑天)은 그의 호다.

 중국에서는 청렴한 관리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중국인들은 그를 존경해 ‘포공(包公)’이라고 부른다.


송나라 당시의 시정모습.


송나라는 왕의 성을 붙여 조송이라고도 하며 개봉에 수도를 정하고 있을때를 북송~~~


금나라의 확장 정책에 밀려 임안(항저우)에 수도를 정할때가 남송시대라고 한다. 


송나라는 예술, 사상 및 각종 실용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져,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였다.


제지, 인쇄기술의 향상과 시민경제의 발흥으로 인해 이때까지 일부 관료, 귀족에게 독점되던 ~~


문학, 미술, 음악, 사상 등이 시민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중국 최초로 상인길드가 탄생하고, 상업형식이 정비되었다. 이것과 함께 약속어음이 운용되어

 사천, 섬서지역에서는 세계 최초의 지폐라 할 수 있는 교자(交子)가 발행되어 유통되었다.


송나라 성의 모습과 ~~~


왕과 왕비가 친히 나와서 시정을 살펴던 곳도 만들어 놓았다.


높은 관청이 있고 역대 어느 시대보다도 매우 왕성하게 과거제도가 이루어져 ~~~


3년에 1번 시행되는 과거시험에는 약 3~400명이 합격하여 적절한 관리 수요를 조절했다.


이곳 거리에도 송나라 관리로 분한 관계자들이 시정을 순찰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관청을 들려다보니~~~


그들의 위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송나라 시대의 가마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중국에서 불교가 융성하였던 송나라의 ~ ~~


불교예술을 감상하기로 하자.


커다란 저금통을 안장에 매달은 백마옆으로~~~


괴기한 조긱상과 높은 계단이 있다.


계단 중간 중간 사잇길에는~~~


작은 법당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한쪽 절벽면에는 동굴을 파서 부처님을 모셔 놓기도 하였다.


계단을 올라가는 모녀의 모습을 잡고~~~


각종 석상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고는~~~


맨위에서 거대한 석상을 알현하게 된다.


동굴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 보니~~~


크고 작은 석불들이 ~~~


많이 모셔져 있으며 일부는 채색도 되어 있다.


동굴에서 나와 비천상 앞에서 자세를 잡아보고~~~


거대한 와불 앞에서도~~~


나의 모습을 남긴다.


마지막 석불을 감상하고는~~~


다시 송나라 거리로 내려와~~~


내일 상해로 가면서 보는 동양의 베니스라는~~~


주가각을 축소해 놓은 곳을 구경하고~~~


시정을 지나~~~


송나라 재현거리 송성을 빠져나와~~~


늦은 저녁이 준비된 곳으로 이동하여 삼겹살 무한제공 하는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을 마감한다.

0.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은 동양의 베니스 주가각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