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 이수광 선생 묘소.
소개 : 조선 중기의 명신이며, 실학의 선구자로 임진왜란 때 함경도 지방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1578년(선조 11) 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승문원 부정자가 되었으며, 호조좌랑·병조좌랑을
지냈고,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방어사 조경(趙儆)의 종사관이 되어 종군하였으나, 아군의
패배 소식을 듣고 의주로 돌아가 북도선유어사(北道宣諭御史)가 되어 함경도 지방의 선무 활동에
공을 세웠으며 그대적 저술책 지봉유설은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
지봉 이수광 선생의 묘소 입구 표시판
이수광선생의 묘소는 삼부자가 묻혀 있는데 비각의 모습이다.
이곳은 경기도 지방문화재 기념물로 관리하고 있다.
이수광선생의 묘소 안내판
비각에는 삼부자에 관한 묘비가 모셔져 있다.
아버지 이희검의 비석.
본인 이수광의 비석.
아들 이성구의 비석.
묘비 쪽으로 들어가면~~~
맨 아래에 있는 묘소는 정경부인 파평 윤 씨 묘라고 하였는데~~~
비석의 모양이 오래된 것 같지 않고 누구의 부인의 묘인지 표시가 안되어 있다.
바로 위에 묘는 ~~~
아들 이성구 부부의 합장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묘는~~~
아버지 이희검의 부부 합장 묘이다.
그리고 맨 위에 있는 묘소가 지봉 이수광의 묘소이다.
총탄 자국으로 인해 글씨의 정확한 판독이 어려워 1978년에야 비로소 신도비를
확인하고 이수광의 묘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묘소의 양옆에는 동자석이 보이는데 머리에는 쌍계라 불리는 상투가 두 개 얹어져 있고 ~~~
웃고 있는 동자석의 손모양은 손 가리개로 보이지 않지만~~~
전면의 허리끈과 뒷면의 어깨를 덮은 천(운견)과 허리의 요포는 정확히 그 모습이 보여~~~
17세기 초의 동자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봉 선생의 묘소에서 내려다본 묘소의 모습을 촬영하고 방문을 마감한다.
0.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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