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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물따라 /충청. 호남, 제주

거문도 영국군 묘지

by 어우렁 2021. 9. 23.

거문도 영국군 묘지

거문도 영국군 묘지는 1885년(고종 22년) 전 세계에 제국주의의 야욕을 펼치던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부심하던 차 거문도의 전략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30여 년에 걸쳐 탐색한 결과

이곳을 무단 점령하여 2년간 머물다 갔다.

2년간 점령하며 그 사이 영국군 12명의 사체를 안치한 곳이 영국군 묘지이다.

영국 해군의 전통에 따르면  해상에서 사망 시 수장을 하고 전투지에서 사망하면 ~~~

현지에 무덤을 만든다고 하는데 일종의 영역을 표시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는 방편의 하나이며

영토를 넓히던 신라의 진흥왕이 순수비를 만드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1885년 4월 15일부터 1887년 2월 27일까지 거의 2년간 거문도를 ‘해밀턴 항구’라고 부르며

동도, 고도,  서도로 구성된 거문도는 고도가 중심이다. .

항구에 들어서면 배에서 눈에 띄는 모텔 이름을 해밀턴 모텔이라고 했으며 해밀턴은

당시 영국 해군성의 장관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은 영국군 묘비를 훼손하여 현재는 거문도 주둔 시 사망한 영국 해군

비석 두 개와 1903년 거문도를 지나던 영국 알비온 전함에서 사망한 해군 1명을 기린

나무 십자가가 남아 있다.

서울 주재 영국대사관은 매년 이곳을 성묘하고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고도의 포구 중심지에서 600M 떨어져 있는 영국군 묘지는 약간의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르면

정겨운 돌담이 나오고 바다의 전망이 나오는 길섶에는 채소밭이 탐스럽다.

그 길을 따라 오르면서 섬 앞으로 펼쳐지는 전망이 포근하고 이국적인 맛도 있어 보인다.

이곳 거문도에는 1905년에 일본의 어부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일본식 건물도 남아있다. 

영국군은 막사를 짓고 창고를 건설하는데 주민들을 동원하고 임금을 지불하고

대민접촉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신사처럼 행동하여 주민들의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영국군 묘지의 모습. 십자가 묘지는 1903년 알비온 전함에서 사망한 수병의 묘지이다.

묘비명의 모습

양쪽의 비석은 2년간 점령하였을때 사망한 12명의 묘지중 남아있는 2기이다.

영국군 묘지에서 본 거문도 앞바다의 풍경.

올때는 둘레길따라서 올라왔고 갈때는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잘만들어 놓았다.

이길은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해변가의 모습

지나가는 길 밑에 있는 묘지는 어느 교회의 안식처 공간이다.

영국군들이 있으면서 만들어 놓은 최초의 테니스장은 지금은 초등학교로 되었다.

0.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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