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4.(아리야발 사원 트레킹)
0. 여행기간 : 2022년 6월 16일 ~ 6월 21일.
오늘은 몽골에서 제법 유명한 사원을 돌아보기로 하여 몽골 불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몽골 불교는 원제국을 형성한 태조 칭기즈칸 때부터 보호를 받았으나 ~~~
몽골정권과 불교의 관계는 태종 때부터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원대의 라마승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파스파(八思巴, 1239-1280)이다.
그는 티베트문자를 기초로 하여 몽골의 새 문자(파스파 문자)를 만들고 1270년 그 공으로 ~~~
제사가 되었는데 제사란 황제에게 계(戒)를 가르치는 스승이란 뜻이다.
1280년 파스파가 죽자 원제국 각지에서는 제사사(帝師寺)가 건립되고 파스파의 상이 모셔졌다.
제사의 지위는 더욱 존엄해져 제사의 명령은 조칙(詔勅)과 동등한 권위를 가졌다.
원의 이처럼 지나친 태도는 라마승을 타락하게 하여 마침내 원제국의 멸망이 되는 원인이 되었다.
1368년 원제국이 멸망하자 극성하던 몽골의 라마교는 쇠퇴의 길을 보였다.
북원(北元)의 알탄칸이 청해(淸海)를 원정하자 1574년부터 청해에서 사원 건립이 시작되어~~~
1578년에는 티베트의 법왕 제3대 달라이라마 소남 강조 초청법회를 베풀었다.
1911년 10월 신해혁명 이후 외몽골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
1921년 몽골 인민혁명당의 수흐바토르. 초이발산 등이 혁명을 일으켜~~~
몽골 불교의 살아 있는 부처님(活佛)으로 추방받던 보크드 게겐을 원수로 입헌군주국을 세웠다.
라마교의 법왕으로 명목상의 원수이던 보크드가 죽자 소련의 무력을 배경으로 인민공화국이 ~~~
수립 되었고 당시 몽골 인민공화국은 인구 155만 5천 명 중 80%가 라마교도이다.
한집안에 남자아이가 많을 때는 한두명을 출가시키는 풍습이 있다.
공산혁명 전에는 7백여 개의 사찰이 있었다.
혁명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불교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를 투옥, 살해했다.
이 같은 반종교 정책이 국민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자~~~
몽골 정부는 불교에 대해서 완화 정책으로 전환했다.
몽골이 불교를 헌법상으로 공인한 것은 1934년이다.
현재 5개의 사찰에 2백여 승려가 있다고 하며 울란바토르에는 ABPC본부가 있다는데 ~~~
무슨 약자인지는 모르겠고 아마도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몽골 불교 중앙회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몽골인들이 이 사원을 방문하여 기념 촬영을 반드시 한다.
사찰 안에도 자유스럽게 왕래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음식도 먹는다.
사원의 뒤편은 바위산이 둘러져 있다.
사원에 올라가 추억을 남기고 ~~~
마니차를 돌려 보았다.
사원을 올라오는 108계단을 배경으로 앞의 전체 풍경을 살펴보고 ~~~
사원을 내려와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
뒤돌아 서서 사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원 앞 바위 산에도 여러 모습의 바위들이 있어 앵글에 잡아보고 ~~~
사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신비스러워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았다.
0.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 편은 열트산 트레킹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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