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유적(만동묘)
우암 송시열 선생의 유적지는 많은 곳에 산재되어 있지만 이곳에서는 화양구곡에 있는
송시열 선생의 유적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있는 경승지. 1974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
1984년 속리산국립공원에 포함되었다.
화양구곡 입구에는 화양동이라고 부른 이유가 적혀있고 ~~~
조선 중기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은거하며 이곳의 경치가 중국의 무이구곡에 버금간다고
보고 아홉 개의 구비마다 이름을 붙이면서 화양구곡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 명승지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청천면 화양리 화양 1교에서 충청북도자연학습장에 이르기까지 약 5km에 달하는
계곡으로 1곡은 암벽이 하늘을 찌를 듯 떠받들고 있는 경천벽이 있으며
2곡은 구름의 그림자가 냇물에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이라는 곳이며 ~~~
3곡은 송시열이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여 매일 새벽마다 울었다는 읍궁암이 있고 4곡은
금싸라기 같은 물속의 모래가 들여다보인다는 금사담이 있는데 9곡 가운데 경치가 가장
빼어나다고 한다.
5곡은 별을 관측하는 곳 같다는 첨성대와 6곡은 우뚝 솟은 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는
능운대가 있으며 ~~~
7곡은 꿈틀거리는 용과 같다는 와룡암, 8곡은 푸른 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9곡은 화양천 한가운데 펼쳐진 하얀 바위를 말하는 파천까지 이다.
송시열의 유적은 화양구곡 3, 4곡 앞에 있는 만동묘를 말하며 ~~~
이곳에는 만동묘뿐만 아니라 화양서원도 있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 (만력제)과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 (숭정제)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만동묘라는 이름은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조종암(朝宗巖)에 새겨진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을 ~~~
모본 하여 화양리 바위에 새겨놓은 것을 그 첫 글자와 끝 글자에서 취해 지은 것이다.
그런데 만동묘는 이자성 난으로 명나라가 멸망한 지 60여 년이 지나 권상하가
송시열의 유지를 받들어 명나라의 신종 만력제와 의종 숭정제 사당을 인근 ~~~
유생들의 협력을 얻어 화양서원 내 만동묘를 창건하고 스승의 유언대로 만력제와
숭정제의 신위를 봉안하여 제사를 올리니 숙종 30년(1704)이었다.
영조 2년(1726) 나라에서 만동묘에 제전과 노비를 내려주었고 그 후에도 예조에서
90명이 돌아가며 묘우를 지키게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지원했으며 ~~~
정조는 직접 사필을 내리기도 하였는데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만동묘는 ~~~
이후 서원 폐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받아 결국 고종 2년(186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당시 만동묘를 철폐되었다가 고종 10년(1873) 부활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1937년까지 지방 유림들 이일제 몰래 제사를 지냈으나 발각되어
1940년에 완전히 제사의 맥이 끊겼고 1942년엔 명나라에 대한 보은 명목으로 세워진
만동묘정비의 글자를 모조리 쪼아 없애고 만동묘 건물을 불태웠으며 ~~~
비석은 묻어버렸는데 1983년 홍수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글자를 모두 쪼아 없애버렸기에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재의 만동묘와 화양서원은 2001-04년까지 만동묘와 승삼문, 송자사 등 일부 건물을 ~~~
복원했고, 남은 건물들도 복원하려고 했지만 중화 사대사상의 상징과 같은 건물의 복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고, 무엇보다 백성들을 수탈하던 만동묘의 악명이 있어서 ~~~
이것 때문에 복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은 것으로 볼 때 조선의 친명사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임과 동시에 당시 만동묘를 비롯한 많은 서원들이 ~~~
권력을 가지고 행패 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1942년 만동묘 건물을 철거,
괴산경찰서 청천면 주재소를 짓는 건축자재로 사용하였다.
만동묘의 건물은 묘우(廟宇) 5칸, 정침(正寢) 3칸, 동 · 서 협실(夾室) 각 1칸, 성공문
(星拱門) 3칸, 좌 · 우 협문(夾門) 각 1칸, 좌 · 우 낭(廊) 각 3칸, 신주(神廚) 중 1칸,
동방(東房) 1칸, 서방(西房) 2칸 등으로 운영담(雲影潭) 위쪽, 낙양산(洛陽山) 밑에
북향으로 위치해 있었다.
만동묘 앞에는 화양구곡의 ~~~
가장 아름다운 금사담이 보이고 ~~~
현대식 조형물도 있으며 ~~~
오랜 세월을 지켜온 내용을 알 수 없고 안내문도 없는 비석 군 앞에 계곡에는 ~~~
읍궁암이라고 ~~~
효종대왕의 승하에 송시열 선생이 대성통곡하였다는 바위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화양동 사적비에 관한 ~~~
이야기를 적어 놓은 비석을 촬영하면서 오늘 관광을 마친다.
0.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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