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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물따라 /충청. 호남, 제주

노수신 적소

by 어우렁 2011. 12. 13.

 

 

노수신 적소

 

 

 

0. 노수신 소개

   노수신의 본관은 광주, 조선초기 개국공신으로 우의정에 오른 노숭의 후예로,아버지는 활인서의 별제

노홍이었다. 횔인서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는 의료관청이었고, 별제 정6품 중간 관리급 직위였다.
노수신은 장인인 성리학의 대가 이연경의 문하생으로 학문을 익혔는데, 이연경은 곧 명정승 이준경

종형으로, 노수신 이준경과 함께 이연경밑에서 동문수학 했던 사이이기도 했다.


노수신은 中宗(중종)38年(1543) 문과에 장원으로 뽑혀 첫
벼슬로 성균관전적이 되고 호당에뽑혀 독서로

학문을 연마했던 뛰어난 인재였다.
인종초기 노수신 사헌부정언에 올라 인종의 외척 대윤편에 서서 소윤일파의 탐관 이기 탄핵하여 파면시킨 일이 있었는데, 인종이 죽고 소윤이 권력을 잡자 노수신은 이기등의 보복을 받아 순천에 유배 당하고 말았다. 뒤에 이른바‘양재역벽서사건’에 관련됐다는 허물을 덮어쓰고 다시 죄가 가중되어 진도로 귀양보내져

이후 19년간 외진 섬에서 혹독한 곤욕을 치렀다.
그후 명종 20년 이곳으로 옮겨와 2년뒤 선조가 즉위하면서 풀려나
홍문관교리에 기용되고, 이후 대사헌

대제학 이조판서등 요직을 역임한 뒤, 우.좌의정을 거쳐 1585年 5月 71세로 영의정에 올랐다. 영의정 재임

3年 만에 영중추부사 실직에서 물러 났는데,‘정여립의 모반사건’이 터지자 그 전에 정여립을 추천했던 지난일이 거론되어 그만 파직 당하고 말았다.
그의 묘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금산리에 있어 경상북도의 문화유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한참 뒤인 숙종때 영의정 허목이 비문을 지은 신도비가 세워졌다. 

 

 

멀리서 본 노수신 재상의 적소 모습

 

 

입구에 있는 유적비

 

대문으로 들어서면~~~

 

수월정이라고 쓴 3칸짜리 한옥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오랜 된듯한 비석이 서 있고~~~

 

집 전체를 한번 둘러 보았다.

 

 

 

집안 내부도 드려다 보고~~~

 

 

 

더우렁님 사진도 한장 찍어 주었다.

 

밖으로 나와~~~

 

앞에 보이는 괴산호을 바라보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글씨와 조형물을 촬영하고는~~~

 

그 뒤에 있는 노수신 재상의 후손이 만들어 놓은 비석을 찍고는~~~

 

노수신 적소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한컷 더 앵글에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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