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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찾아 사람찾아/전시관, 박물관, 기념관, 수목원

이세돌 바둑 기념관

by 어우렁 2013. 2. 28.

 

 

이세돌 바둑 기념관

 

 

 

0. 이세돌 프로기사의 이야기

바둑은 피바람 부는 강호다. 바둑 고수들의 한판 승부는 늘 천길 벼랑 끝에서 이뤄진다. 아차, 한 수 삐끗하면 그대로 캄캄절벽 아래다. 암수(暗手)가 있고, 장풍이 있고, 무형강기의 내공이 있다. 온갖 권법이 어지럽게 날고, 서늘한 칼 기운이 번득인다.


이세돌 바둑은 세모돌이다. 그의 바둑은 불온하다. 사납고 격렬하다. 용암처럼 펄펄 끓는다. 언제 어디서 폭풍우가 몰아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도무지 균형과 안정을 참지 못한다. 판을 뒤흔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다. 그는 판을 뒤엎어 새 틀을 짠다. 역시 바둑 천재다. 영재와 천재는 뭐가 다를까. 그건 영재는 아무리 잘해봐야 백 점이지만, 천재는 천 점, 만 점 그 끝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신안 비금도 섬 소년이다. 비금도는 들판이 넓고 기름지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농사짓고 사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이세돌이 태어난 도고리(道古里)는 비금도에서 가장 큰 동네다. 한때 300여 호(현재 143호)나 됐으며, 지금도 마을이 부티가 난다. 이 마을 역시 고기잡이로 먹고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같이 염전이나 논밭을 일구며 산다.

이세돌이 태어난 집은 족히 1500평은 될 정도로 널찍하다. 옛날 논을 메워 집을 지은 데다, 이웃 빈집을 사들여 텃밭을 만든 덕분이다. 어머니 박양례 씨(66)가 서울 자식들 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부친 이수오 씨는 1998년 암으로 작고했다.

이세돌은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아마 5단)에게 바둑을 배웠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바둑판 네 귀퉁이에 1개씩 4개의 사활문제를 내어주고 논에 나갔다가, 저녁 농사일이 끝나면 돌아와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했다. 아버지는 답이 틀리면 이세돌에게 어김없이 불호령을 내렸다. 평소 자상하고 인자했지만 바둑교육에서만은 엄격했다. 어린 이세돌은 그 너른 집에서 혼자 골똘히 바둑판에 빠졌다. 흑백을 모두 쥐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판을 허물었다가 새 판짜기’를 되풀이했다. 결국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이세돌은 아버지와 맞바둑을 두더니, 2학년 때는 아버지를 훌쩍 넘어섰다.

이세돌은 다섯 형제 중 막내이다. 프로기사 이상훈 9단(39)이 바로 그의 친형.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세돌이 서울에 올라와 바둑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형 덕분이다. 누나 이상희(아마 5단), 이세나(아마 6단)와 작은형 이차돌(아마 5단)도 모두 바둑 고수다. 아버지가 다섯 자식 모두에게 바둑 공부를 시킨 것이다.

목포에서 10년 가까이 초등학교 선생님을 했던 아버지는 어느 날 홀연히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어찌 보면 이세돌 아버지 스스로가 기인이었다. 마침 비금면 우이도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선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영락없는 암벽 바둑판이다.

2008년 12월 비금도 옛 대광초등학교에 이세돌바둑기념관(061-240-8356)이 세워졌다. 폐교된 학교를 리모델링해 전시관과 대국장, 숙박시설을 갖췄다. 전시장엔 이세돌이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처음 배울 때 쓰던 바둑판과 바둑알이 그대로 있다. 이세돌의 각종 우승 트로피와 그의 성장 과정도 살필 수 있다. 건물 앞면 벽엔 흑백 초록 노랑 연분홍의 커다란 바둑돌이 알록달록하게 걸려 있다. 이세돌은 도고리 부근의 동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했다. 신안군은 기념관 내에 82억 원을 들여 ‘바둑 명예의 전당’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세돌은 막내답게 고집이 세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려 한다. 천재들이 그렇듯 그는 집중력이 뛰어나다. 한번 빠지면 우레 소리가 들려도 모른다. 하다못해 산에 가더라도 죽기 살기로 오른다.

그의 바둑은 격식을 싫어한다. 틀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하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번득인다. 어릴 때 혼자 스스로 깨친 덕일 것이다. 그렇다. 바둑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서 어떻게 1위에 오를 수 있을까.

이세돌 바둑의 본질은 싸움바둑이다.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팽팽하게 잘 짜인 판은 못 참는다. 끊임없이 흔들다가, 기회가 생기면 무차별하게 공격을 퍼붓는다. 그만큼 수읽기에 빼어나다. ‘판을 엎어라.’ 그가 최근 펴낸 그의 자서전 제목이다. 그는 말한다.

“한국바둑은 획일화가 문제다. 자기만의 바둑을 둬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5년쯤 뒤 중국바둑이 한국을 앞설 것이다. 지금 나의 최정상 자리는 5년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는 아무래도 체력이 달려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 마흔 살까지는 버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세돌 기념관은 전남 신안군 비금면에 있는 폐교된 대광분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들어 졌다.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고가 있고~~~

 

1층 복도 첫번째 교실에 이세돌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안에는 여러 글들과~~~

 

 

 

이세돌 프로기사의 약력과~~~

 

그의 성장과정~~~

 

기념품~~~

 

그에게 영향을 준 친형 이상훈 프로기사의 초등학교 이름표~~~

 

그의 아버지 등~~~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그의 상패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에 대한 기풍도 소개되어 있으며~~~

 

 

 

신안천일염 소속으로 한국바둑리그에도 참여 했었다.

 

우리나라에 바둑계의 거장들이 소개되어 있고~~~

 

 바둑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관람을 끝내고 옆방 대국실에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는 대국실은 썰렁하기만 하고~~~

 

바둑 기보 안내판에 몇점의 바둑을 놓아 본다.

 

입구 우측에 있는 추억의 기념관에 들어가 보니~~~

 

대광분교가 1회 졸업생부터~~~ 

 

폐교되기까지 77회, 77년의 역사가 거기에 있었다.

0.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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