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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물따라 /서울, 경기

삼성산 성지

by 어우렁 2015. 5. 14.

 

 

삼성산 성지

 0. 삼성산의 유래

     관악산 한 봉우리에서 원효, 의상, 윤필이 살았다고 해서 그 봉우리를 삼성산이라고 하였고

   또한 고려말 지공, 나웅, 무학대사가 도를 닦았다고 해서 삼성산이라고 하였는데 근대에 와서

   1839년 기해박해때 프랑스 성직자. 3명이 순교하여 이곳에 오랫동안 묻여 있었고 훗날 교황청

   에서 세분을 성인으로 추대하여 묘하게 삼성산의 이름과 맞아 떨어지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삼성산 성지 입구 모습

 

삼성산 성지의 배치도

 

삼성산 성지의 안내문 

 

성지에 들어서면 잘 가꾸어 놓은 꽃밭이 있다.

 

성경에 나온 좋은 글이 적혀 있고 뒤에 고백소라는 푯말이 있는데~~~

 

고백소에는 특별한 설치가 되어있지 않고 그냥 의자와~~~

 

성경관련 책들이 구비되어 있어 아마도 본인 스스로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고백하는가 보다.

 

이런 기도문도 있다.

 

예수가 심판을 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때까지의 모습을 동판으로 새겨 놓았는데~~~

 

몇장만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 보았다.

 

 

 

순백의 마리아 상이 있으며~~~

 
신부님이나 관련자가 설교하고 미사를 집전하는 곳 인듯 같다.

 

예수 십자가와 함께 삼 성인이 비석이 서 있다.

좌측부터 범 앵베르 라우센시오 주교, 나 모방 배드로 신부, 정 샤스탕 신부 순이고 

특히 나 모방 베드로 신부는 우리나라 초대신부인 김대건 신부를

 발굴하여 프랑스로 유학을 보낸 장본인 이다.  

 

0. 삼성산 성지의 약사

    삼성산 성지는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난 1839년에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앵베르(Imbert 라우센시오 范世亨) 주교를 비롯한 성 모방(Maubant 베드로 羅伯多祿) 신부와 성 샤스탕(Chastan 야고보 鄭牙各伯) 신부의 유해가 1843년부터 1901년까지 58년간 안장되었던 곳이다.
0. 1839년 기해박해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처형 당함.

0. 1839년 ~ 1845년 노고산에 안장됨

0. 1845년 ~ 1901년 58년간 삼성산에 안장됨

0. 1901년 10월 용산 예수성심소학교 성직자 묘지로 이장

0. 1901년 11월 2일 명동대성당 지하묘소로 이장

0.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성인으로 시성 받음

0.1989년 서울대교구와 신림동 본당에서 현 세 성인의 묘지자리 16,000평을 매입

0. 1989년 9월10일 명동대성당 지하묘역에서 세 성인 유해 일부 현 삼성산 성지로 이장하여

              교황대사 이반 디아스 대주교와 배세영, 오기선, 유영도 신부의 공동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함 

 

 삼성산 성지를 둘러보고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으면 성지를 떠난다.

0.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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