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 읍성
해미읍성 정문인 진남문에서
진남문 뒷 모습
0. 해미 읍성 소개
이 성은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왜구가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에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으로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으로 있다가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에 옮겨져서 해미읍성으로 이용되었고, 1914년까지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衙舍) 및 작청(作廳)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해미읍성 안내글
해미읍성의 와곽 모습
해미읍성 안내도
해미읍성 남문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해미 읍성에 올라 바라본 여러 풍경들~~~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을 제외한 서,북,동문은 폐쇄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국궁 체험장에서~~~
국궁을 쏘아보는 친구들~~~
해미읍성 객사 모습
은행나무 사연과 은행나무 모습
호서좌영 정문 모습과 고령의 느티나무 그리고 뒷 모습
동헌 설명판과 동헌 모습 그리고 군관 회의 장면
어느분의 정성인가 돌탑의 모습들~~~
동장대로 올라가는 길
최고 지휘관이 지휘하던 동장대의 모습. 하지만 근대에 세워진것 같다.
날씨가 따뜻하면 승마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민속 가옥으로 말단관리의 집모양과 해설판
민속가옥으로 상인의 집을 재현해 놓았고 해설판의 모습
화장실과 헛간 모습
안방의 모습
실질적으로 관광객들을 위해 물건도 만들어 판다.
부엌과 곳간
민속가옥으로 부농의 집을 소개한 설명판과 관련 가옥들의 모습들
집도 크고 텃밭도 있다.
부엌과 배틀 모습
장독대의 풍요로움과 곳간의 모습
있어 보이는 안방의 모습
넓지한 화장실과 닭과 가축을 키울수 있는 축사까지 있다.
돌담길도 재현 하였지만 돌이 자연석이 아니라 가공석이다.
천주교 신자 순교 기념비의 앞과 뒷 모습
해미 읍성의 옥사 설명판과 모습들~~~
옥사 모습과 형들 모습
옥사 형리 모습과 옥사 안에 갇힌 죄인들의 모습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 받았던 나무와 해설판
해미 읍성에 설치되어 있는 당시 무기와 해설판
0. 해미읍성 관람은 여기까지 입니다.
해미읍성은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해미 톨케이트로 나오면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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