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해양경찰 충혼탑
국도변에 있는 충혼탑 안내문과 비문
계단을 올라가면 충혼탑이 보인다.
이 충혼탑은 해양경찰 충혼탑이며 1974년 6월 28일 북한 경비정과 교전으로 침몰한
863함과 해상 출동 경비 중 침몰한 72 정의 사망자 43명을 위한 충혼탑이다.
당시 상황은 1974년 6월 26일 오후 6시. 28명의 승조원(경찰 14명, 전경 13명, 보조인력
1명)을 태운 속초해양경찰대 소속 863함 경비정(181t)이 속초항 전용부두(속초수협 옆
부두)를 출발했다. 계절적 요인으로 안개도 자욱했다. 출항 3일째인 28일 새벽
해안으로부터 40마일 지점에서 순항 경비를 계속했다. 귀항일이 내일(29일)인데,
갑자기 레이더에 이상이 생겼다.
짙은 안개로 위치 확인이 어려워 인근 해역에서 근무 중인 해군 57함과 정보를 교환,
위치를 추정해야 했다. 나침판에 의지해 귀항하던 863함이 57함에 “침로를 달라”라고
요구했다. 57함이 방위각도를 불러 줬다. 오전 8시 45분쯤 863함은 “여전히 시정이
좋지 않다”라고 보고했다. 바로 그때 상황실에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북괴군 군함
우측에서 발견.” 북 전투함 3척이 863함을 포위했다.
그대로 피랍될 경우 경비정에 있는 각종 비문 등 작전계획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었다.
저항하면 전원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863함에는 80 구경 함포 1문과 50 구경 중기관
총 3정, 30 구경 경기관총 2정과 소총 등 개인화기가 전부였다. 함정 안정일 경감을
포함해 모두 26명. 경찰관 2명과 전투경찰 6명은 시체로 인양됐고 18명이 실종됐다.
진종영 순경과 전투경찰 신명선은 북에 생포돼 피랍된 사실이 얼마 후 열린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석상에서 확인됐다.
이 사건의 원인은 급격한 기상 악화로 짙은 안개에 높은 파도가 치면서 기계 고장으로
선박이 충돌하면서 침몰했다. 군사 정권이 혼란한 1980년대에 일어남 사고라 제대로
된 조사나 알리기도 힘들던 시기라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다
2019년 KBS에서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알려졌고 유가족들은 꾸준히 시신 인양을 요구
하고 있으나 현재에도 해경 측은 예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선채 인양조차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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