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피격 위령탑
0. 사건 경위
대한항공 858기 탑승객들중 다수의 희생자들은 열사의 나라에서 땀흘려 일하고 돌아오던 노동자들
이었던 KAL 858기 폭파사건은 다음과 같이 전개 되었다.
1987년 11월 28일 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기가 아랍 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기착한 뒤 방콕으로 출발했다. 그 후 이 여객기는 11월 29일 14시 1분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 방콕공항 관제탑에 "45분 후 방콕에 도착하겠다.비행중 이상 없다"는 보고를 무선으로 보낸
것을 끝으로 소식이 끊어졌다. 이 여객기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한국인 근로자 등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 잔해가 태국 해안에서 발견
되었다고 태국 내무부가 발표하였고, 1997년 11월 30일 오후 KAL858기의 추락을 정부당국에서 공식적
으로 발표했다.
12월 1일 사고 비행기에 한국입국이 금지된 "요주의 인물"인 일본인 2명이 탑승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급진전되었다. 문제의 두 일본인은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여권을 가진 남녀로
바그다드에서 탑승한뒤 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으며, 이중 마유미의 여권은 위조여권
임이 바레인공항에서 밝혀졌다. 이들은 바레인에서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경유하여 탈출하려다 위조
여권 적발로 체포되자 담배 속에 숨겨둔 독극물이 들어있는 앰플(ampule)을 삼켜 자살을 시도하여
남자는 숨지고 여자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없이 곧 회복되었다.
한국으로 신병이 넘겨진 "마유미"여인은 국가안전기획부의 사건조사시 중국어와 일본어를 사용하며
중국인행세를 하며 범행을 부인하다가 12월23일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을 자백했다. 본명이 김현희
(당시 26세)이며 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공작원으로서 음독자살한 김승일(당시 70세)과 함께 "88 서울
올림픽 개최방해를 위해 KAL기를 폭파하라"는 북한 김정일의 친필 공작명령을 받고 기내 좌석선반에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시한폭탄(時限爆彈)을 놓고 내려 공중에서 폭발(爆發)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 후 김현희는 재판을 받고 사형이 선고(1990.3.27) 되었으나 전향의사 표명과 김정일의 도구로써
이용된 점이 정상참작되어 대통령 특별사면(1990.4.12)으로 석방되었다.
2004년 현재 KAL858기 폭파사건은 희생자유가족이 주축이되어 진상조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
재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폭파당시의 여러가지 미심쩍은 정황등을 근거로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사건이다. 정부의 관련기관에서는 조사의 일부분 미비점을 인정
하면서도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1997년 사건발표에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고있다.
2004년 아직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1997년 사건당시의 수사발표를 믿는다 해도 유가족들이 겪고있는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김정일정권이 이 사건의 당사자라면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희생된 유가족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
들께 참회와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기 버마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은 1990년 사건 3주기를
맞아 고인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KAL기 폭파사건과 같은 비극이 없기를 염원하며 1990년 11월 29일 양재
시민의 숲 제1지구에 위령탑이 건립되었다.
위령탑에서 어우렁
0.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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