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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우리나라 100대 명산

무주 적상산 이야기

by 어우렁 2009. 11. 6.

 

우리나라 100대 명산 20

무주 적상산 이야기

 (장노시방 쉰 한번째 산 이야기)

 

적상산 정상 입간판

0. 적상산 소개

    전북 무주군 적상면에 있느 해발 1034m 높이의 상산(裳山)·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한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에서 북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북동부에 위치하며, 주위에는 백운산(白雲山:559m)·대호산(大虎山:592m)·단지봉(769m)·시루봉(499m) 등이 있다. 산 전부는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절벽 주변에는 단풍나무가 많다. 이 암벽을 치마바위라고도 하며, 가을철이면 온 산이 빨간 옷을 입은 듯하다 하여 산의 이름을 적상산이라고도  또한 했고 바위가 붉은 색이라고 적상산이라고 한다.

동안·서안·북안에서는 금강의 지류인 무주남대천이 발원하며, 계곡이 방사상으로 발달했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리고, 인근 마을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의 경관이 특히 뛰어나다.

 

0. 2008년 10월 26일 산행

    지금까지 산행을 혼자 찾아 다니면서 산행을 하다가 지방에 있는 산을 가려니 경비 소요가 많아 처음으로 경비가 저렴한 산악회와 산행을 같이 하기로 하고 신길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7시 30분에 출발하여 적상산을 향했다.

 

신길역 모습과 타고 갈 관광버스

 

 

가다가 중간에 한번 휴계실에서 휴식을 하고~~~

 

적상산 밑에 있는 무주 양수 발전소를 방문하였다.

 

 

사진 촬영은 여기까지~~~ (촬영금지 구역이라 머리에다 찍어 놓았다.)

0. 양수발전소 설명

    만수시나 심야의 잉여전력으로 펌프를 운전하여 발전소 하부에 있는 저수지의 물을 상부 저수지로 퍼올려서 비상시에 이용하는 발전소.

이곳 무주 양수발전소는 무주호에 물을 받아 놓았다가 적상산 정상 부근 적상호로 끌어올려

30만kw 두대를 낙차 높이 589m에서 떨어뜨려서 그힘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다.

양수 발전소의 어마어마한 시설을 여러분과 같이 공유하지 못해 아쉽지만 규칙이 그러니 많은 이해를 바라며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면 한번 정도 관람하면 좋은 공부가 될듯 합니다.

 

드디어 적상산 도착(입장료가 있을덴데~~ 버스안에서 찍었다.)

 

적상상 9부능선에 주차장에 도착(오늘 산행은 거져 먹는다.ㅋㅋㅋㅋ)

 

적상산 9부 능선에 있는 적상호 모습

 

적상호 근처에 있는 전망대 모습(우리는 그곳을 안가고 바로 안국사로~~)

 

적상산 사고가 있던 자리인 이전 연혁비 앞에서~~~

(적상호가 생기면서 적상사고는 조금 위로 이전했다)

 

적상산 사고 안내판과 사고 보관 건물들 모습

 

 

 

0. 사고에 대한공부

    사각(史閣)이라고도 했다. 고려는 초기부터 사관(史館)을 두어 실록의 편찬에 힘썼으나 잦은 전쟁으로 소실당하는 경우가 많아 후기부터는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을 만한 안전한 장소에 이를 보관하고자 했다. 조선에서도 이를 계승하여 초기부터 충주와 서울의 춘추관에 사고를 두었다. 1439년(세종 21년)에 경상도의 성주, 전라도의 전주에 새로 사고를 증치했다. 〈세종실록〉 이후의 실록은 모두 활자로 출판하여 이 4사고에 1부씩 보관했다. 임진왜란 때 사고가 모두 소실되어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남았는데, 전주사고 실록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의 공이었다. 1592년(선조 25) 6월에 일본군이 금산에 침입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사재를 털어 태조실록부터 13대 명종실록까지 804권의 실록과 기타 사고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를 정읍시 내장산으로 운반하여 정부에 인계할 때까지 1년여를 번갈아 지켰다. 1593년 7월 정부는 사관을 내장산에 파견하여 실록을 해주로 옮기고 그후 해주에서 강화도, 강화도에서 다시 묘향산으로 옮겼다. 왜란이 평정된 이후 1603년 7월부터 1606년 3월까지 2년 9개월 사이에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804권의 실록을 활자로 출판했다. 이때 출판한 것은 3부였다.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 원본과 교정본을 합하여 5부의 실록이 성립되었으므로 1부는 옛날과 같이 서울 춘추관에 두고 다른 4부는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경상북도 봉화군 태백산(太白山),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妙香山),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五臺山)과 같이 병화를 피할 수 있는 심산유곡과 섬을 택하여 사고를 설치하고 1부씩 분장했다. 춘추관·태백산·묘향산에는 신인본(新印本), 마니산에는 전주실록, 오대산에는 교정본을 봉안했다.

춘추관실록은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소실되었고, 묘향산실록은 1633년에 만주에서 새로 일어난 후금(後金 : 淸)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어가므로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산(赤常山)으로 이전했으며, 마니산실록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의하여 크게 파괴되어 낙권·낙장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마니산실록은 현종조에 보수했으나 춘추관실록은 복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니산실록은 1678년(숙종 4)에 같은 강화도 내의 정족산(鼎足山)에 새로운 사고를 건축하고 그곳으로 이장했다. 따라서 인조 이후의 실록은 4부를 작성하여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했으며 4사고의 실록은 조선시대말까지 완전히 보관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정족산 및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이관하고, 적상산 사고의 실록은 장서각으로 이관했으며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동경제국대학으로 옮겼다. 오대산본은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다 탔고, 조선총독부에 이관했던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1930년에 규장각도서와 함께 경성제국대학에 옮겼다. 장서각 소장 적상산본은 해방 직후 관리 소홀로 도난사건이 발생하여 낙권이 많이 생겼는데 지금은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이다.
조선 후기 사고들의 건축양식을 보면,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2층 누각식의 기와집 건물 2동을 세웠는데, 하나는 실록을 보관하는 사각(史閣)이고 또 하나는 선원각(璿源閣)이었다. 사고의 수직(守直)은 전기의 경우 충주사고에 수호관(守護官) 5명, 별색호장(別色戶長) 1명, 기관(記官) 1명, 고직(庫直) 1명이 있었다. 후기에는 외사고들이 산중에 설치되어 불사(佛寺)를 사고의 수호에 정역시키는 조처가 취해졌다. 그리하여 적상산 사고에는 승군이 20명 내외, 정족산 사고에는 50명, 오대산 사고에는 20명이 배속되어 있었으나 때에 따라 또는 사고에 따라 증감이 있었다. 사고 수호는 수호사찰의 주지를 예조에서 수호총섭(守護摠攝)으로 임명하여 수호책임을 맡겼는데, 조선 후기 수호 책임을 맡은 절을 보면 정족산의 전등사(專燈寺), 적상산의 안국사(安國寺), 태백산의 각화사(覺華寺), 오대산의 월정사(月精寺)였으며 이 절에 위전(位田)을 주어 수호하게 했다. 그러나 외사고의 전반적인 관리책임은 각각 사고마다 참봉 2명을 임명하여 교대로 관리하게 했다. 보관중이던 실록이 좀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햇빛을 쪼여주는 포쇄는 3년마다 1번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산행은 시작되고~~~

 

적상산성 안내판과 적상산성

 

 

0. 적산산성에 대하여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로 고려 후기 거란이 침입한 후 최영은 이곳에 산성을 쌓게 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했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도 반드시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고려 때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 이미 산성을 이용하여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광해군 2년(1610) 이곳에 조선시대 5개의 역사책보관소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실록전, 사각(史閣),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鎭)을 두어 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최근에 성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안국사 일주문

  

 

안국사의 여러 모습들

 

 

 

 

 

 

 

 

 

 

 

 

안국사 관람을 끝마치고 다시 산행을

(그 아름다운 단풍이 가뭄으로 볼품없이 오그라 졌다.)

 

적상산 정상 향로봉까지 1300m

 

혹부리 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나무의 모습

 

만추의 산길을 걸어가는 더우렁님.

 

적상산 정상에서 확인 도장찍고~~~

 

 

하산길에 산성 서문지 안내판과 서문터 안쪽과 바깥쪽

 

 

 

절벽에 나무가 자라고~~~

 

내려가는 산길이 온통 붉은색과 황갈색으로 치장하고~~~

 

장도바위와 설명문

 

 

더우렁님과 산길이 너무 잘 어울린다.

 

최종 목적지인 서창 통제소까지는 1400m

 

샘터가 있는 계곡에는 물이 말라서 없고~~~

 

산밑으로 내려 올수록 아직 단풍이 들 든곳도 있다.

 

산길에 돌을 깔아 놓은것을 보니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구나.

 

하산길에 안내판을 보고~~~ "그래 우리의 미래는 자연이야"

 

한적한 산길~~~~

 

이제 다 왔구나.

 

서창마을에 거대한 느티나무

 

서창 향토 박물관 모습(현재는 휴업중이라 문이 잠겨 있었다.)

 

 

주차장 가는길에 더우렁님이~~"야 단풍이 참 곱다."

 

주차장에서 바라다 본 적상산 모습들

 

 

 

주차장 근처 계곡의 모습 가뭄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다.

 

서창 마을사람들이 남근석(???)이라고 관리하는 돌의 모습

 

 

 

0.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 입니다.

   처음으로 산악회를 따라 산에 가니 경비면에서는 상당히 많은 금액이 절약되지만 산행중

   본인이 가고 싶거나 머무르고 싶은곳 등을 자유롭게 할수 없다는것이 크게 불편하더군요.

   허지만 지방 산을 갈때에는 하는수 없이 산악회를 이용하여야 되겠지요.(경비 때문에)

   저번 천태산과 민주지산을 산행 할때 처럼 혹시 지인이나 아는 사람이 도와준다면 별 문제

   가 없겠지만 그냥 혼자서 갈때는 어쩔수 없이 산악회를 이용 할 계획입니다.

 

여러분 건강하고 행복하게 안녕히 계십시요. 다음 산행은 광명시 구름산으로 갑니다.

 

 

0. 2009년 11월 6일 "카페 장노시방"에서 옮겨와 간단히 재편집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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