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보현사
0. 보현사 소개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1306년(고려 충렬왕 32) 만항(萬恒)이 짓기 시작하여
1314(충숙왕 1)에 완공하였다. 본래 만항이 머무르던 작은 암자였으나 꿈에 그 자리가 평생
수도할 곳이라는 계시를 얻고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건물로는 법당과 나한전·약사전·
문수전·조사전·시왕전·정루·승당 등 많은 건물이 있었고, 소속 암자만도 30여 개나 되었다고
한다. 1318년(충숙왕 5) 민지(閔漬)가 왕의 명을 받아 이 절을 찬양하는 글을 지은 바 있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1799년(정조 23)에 나온 《법우고(梵宇
攷)》에는 보현사(寶賢寺)로 기록되어 있다. 1692년(숙종 18) 처능(處能)이 중창하였으나 이후
불에 탄 뒤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31년 비구니 자연이 중창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때 다시 불에 탄 것을 1956년 이봉기가 중창하고, 1973년에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특별한 유물은 없다.
만항 : 고려시대 승려로 본관이 웅진. 속성 박(朴). 시호 혜감. 탑호 광조. 유생(儒生) 집안 출신
만불교로 개종, 구산(九山)의 승선에서 장원급제하여 금강산, 지리사으로 다니면서 수도
에 힘쓰고, 충렬왕의 명을 받고 삼장사(三藏寺)에 있다가 낭월사,운흥사, 선원사 등의 주
지를 지냈다. 퇴위한 충선왕의 초빙으로 영안궁(永安宮)에서 선(禪)을 강론하였으며, 충
숙왕으로부터는 별전종주 중속조등 묘명존자(別傳宗主重續祖燈妙明尊者)라는 법호를 받
았다. 송광사(松廣寺)에서 입적했으며, 이제현(李齊賢)이 찬술한 비명(碑銘)에 따르면 “조
계수선사(曹溪修禪寺)”의 제십조(第十祖)로 되어 있다.
보현사의 입구는 의외로 소박하다.
남원의 용평제라는 저수지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데~~~
보현사 들어가는 입구에는 거창한 일주문 대신에 야생수국과~~~
초여름 날씨에도 붉게 불타고 있는 단풍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옛날의 화려했던 사찰은 한국전쟁때 모두 불타 소실되고 아담한 대웅전 한채와~~~
스님들이 머무는 요사체 한채가 전부의 모습이다.
사찰 뜰에는 12면 약사여래가 사찰의 규모에 비해 크게 자리 잡았고~~~
돌탑과 함께 부처님이 좌정하여 수도에 매진하고 계시며~~~
조금은 동남아적인 모습의 부처와~~~
달마대사가 한쪽편에 자리 잡았고~~~
동자승도 모습을 보인다.
아담한 사찰을 잠시 둘러보고 금두꺼비가 아닌 석두꺼비의 배웅을 받으며~~~
보현사를 떠나면서~~~
보현사 앞 작은 연못에서 보현사의 옛 영화를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 마음이 씁슬하다.
0. 여기까지 입니다.